장애인 당사자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모습.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장애인차별조사과의 정책 기능과 조사 기능을 분리하는 등 조직 개편을 준비하고 있으나, 이는 실질적인 차별
조사 역량 강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장애인계가 지적했다.
인권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에 따르면 인권위는 오는 26일 기존 장애인차별조사
1과, 2과로 나뉜 조직을 각각 정책전담과와 조사전담과로 개편할 예정이다. 인권위는 기존 조직이 장애인 차별 조사와 정책을 모두 담당하면서
집중도가 떨어진다며, 이번 개편을 통해 정책 기능을 강화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번 개편은 기존
인원을 재배치하는 수준에 그쳐 실질적인 조사 역량의 강화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인권위엔 2013년 1312건, 2014년 1140건,
2015년 11월까지 935건 등 연간 약 1000여 건가량의 장애인 차별 진정이 접수된다. 장애인차별조사 1과, 2과 직원 21명은 이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필요할 경우 직권 조사나 정책 검토 등도 수행하고 있다. 이렇듯 소수의 조사 인원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어, 진정사건 처리
지연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장추련 등 장애인단체의 입장이다.
이에 인권위 내부, 장애인단체, 국제기구 등은 수년 전부터
장애인 차별 조사 인력 확충을 요구해왔다. 인권위는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 시행에 따른 인력으로 47명의 인력 충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이명박 정부가 인권위 정원을 축소하면서 조사 인력도 늘어나지 않았다. 2010년 인권위 조직 개편으로 확보된
장애인차별조사과 정원은 11명으로, 이는 장애인차별조사과 전신인 장애차별팀 7명과 침해구제3팀 5명을 합친 12명보다도 적은 인원이었다.
이후 장애인 차별 진정이 급증하고 장애인계에서도 인력 충원 요구가 빗발치자 정부는 2011년 장애인차별조사2과를 신설했다. 이때 조사
인력이 기존 11명에서 현재의 21명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인권위가 2008년 요구한 인력 47명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거셌다. 2014년 10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유엔의 최종 견해’를 통해
“인권위가 협약 이행을 효과적으로 감독하기 위한 충분한 인적·재정적 자원을 결여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라며 “(한국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충분한 인력과 재정을 지원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미 적은 인원으로 일에 ‘과부하’가 걸린 상황에서 인력 충원 없이 도리어 인력
‘쪼개기’ 식으로 개편하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게 장애인계의 지적이다.
이번 조직 개편을 두고 장추련 등 장애인단체들은 15일 성명에서 “고질적인 사건처리 기간
지체가 더욱 악화될 것이 충분히 예상되며, 결국 (인권위가) 장애인 차별 시정기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장추련 등은 “조직 개편은 문제를 해결하여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초석이지, 장애인 차별 관련 인력 부족이라는
문제는 가려둔 채 한정된 인원의 재배치로 형식만을 갖춘 조치여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장추련 등은 인권위가 장애인 차별 조사 인력 충원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지역사무소 조사 인력을 지역 내 인권 전문가 등으로 추가 채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이번 개편이 조사 역량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정부에 지속해서 인원 충원을 요구하나 정부 당국의 설득이 어렵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