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일중학교 내에 설치될 예정이었던 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센터 ‘커리어월드’를 둘러싼 주민들과 장애인부모, 서울교육청 간의
갈등은 지난해 하반기 장애계의 가장 뜨거운 현안이었다. 주민들은 “우리도 장애우를 혐오하지 않습니다. 다만 학교 내 장애인건물 설립을
반대합니다!”라는 모순적인 말로 센터 설립을 가로막았다. 때로는 “차라리 쓰레기 소각장, 원전폐기물매립지가 들어선다면 허락하겠다.
장애인직업센터는 안 된다.”라는 극단적인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주민들의 눈에는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 중학생과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고, 언제든 돌변해서 주변 사람들을 공격할 수 있는
예비범죄자로 비쳤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을 ‘혐오’와 ‘님비’라고 부르는 것은 장애계 내에서 별다른 이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혐오’나 ‘님비’라는 상투적인 용어로 규정짓고 끝내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필자는
제기동 주민들의 태도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님비’일수는 있겠으나, 좀 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지역 이기주의’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소 망설여진다. 보통 특정 시설이 동네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행동에 ‘지역 이기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주민들이 ‘우리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속물적인 걱정을 할 때이다. 지역 이기주의라는 말을 이렇게 다소 좁은 의미로 규정해본다면, 사실 이번 제기동 주민들의 반대 정서와
지역 이기주의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주민들의 집회에서 나오는 구호나 유인물, 교육청과의 대화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 속에 집값 걱정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보다는 (통제 불능인데다가 폭력성이 다분하다고 여겨지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두려움’이 핵심이다. 물론 그
두려움이 매우 근거가 없고 다분히 편견에 기초한 것이긴 하나, 두려움이란 감정이 애초부터 합리나 이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
두려움에 대한 논리적 반박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매우 보편타당한 정서로 이해했고, 그런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에 답답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글은 주민들을 향한 도덕적 비난에서 잠시 물러서 보고자 한다. 어쩌면 주민들이 보여준 ‘혐오’와 ‘님비’ 행동은 이 사태의 본질이라기보다는 결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과만 가지고 생각하면, 주민들의 ‘잘못된 인식’을 문제 삼으며 ‘인식 개선 교육’을 해야 한다는 공허한 주장만 반복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이들이 왜 발달장애인을 중학생과 공존할 수 없는 위험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작은 생각이 어쩌다 이런 혐오 행동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따져보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물음은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에 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결국은 비관적인 결론 주변만 맴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질문을 던져봄으로써 장애인 혐오를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래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대화할 여지를 찾게 되는 결실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몇 가지 다른 키워드를 가지고 커리어월드 사태를 새롭게 인식하기 위한 질문들을 던져보고자 한다. 다소 두서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 두서없는 이야기를 위한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세월호’이다.
커리어월드 사태를 세월호와 연결하는 것은 보기에 따라선 좀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난 10월
6일 교육청 관계자와 반대 주민들 간의 간담회 속기록을 살펴보면서 다소 충격적인 문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래는 한 반대 측 주민의
발언이다.
학교와 경찰, 국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개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들은 그것이 아무리 과도한 것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학교의 상황과 관련해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학부모가 급우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선생님에게 구박받는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가 등교할 때 주머니에 녹음기를 넣어 교육청 민원의 근거로 사용한다(이는 필자가 한 교육운동단체
활동가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현장학습에서 천식이 있는 아이가 꽃가루 알레르기로 기침을 하다 잠시 숨이 멈추는 일이 있어 주변의
선생님들이 응급조치를 해서 응급실로 보냈는데 학부모는 되려 “응급조치를 시행할 때 환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전문가가 아닌 사람(교사)이 응급조치를 취함으로써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며 문제 삼아 결국 학교로부터 백여만 원의 합의금을
받아낸다.2) 굳이 세월호 참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이미 숱한 사건․사고를 통해 권위 있는 책임자들이 어떤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며
이를 개인에게 전가했는지를 몸으로 체험해 왔다. 다소 비약적으로 묘사하자면, 우리 사회의 사람들은 가족 또는 개인 단위로만 묶인 채 맨몸으로
부유물 하나 붙잡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처지이다. 위험은 우리의 살갗에 직접 맞닿아 있다. 때문에 사람들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작은 위험
신호에도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현대사회의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한 생존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커리어월드 설치를 반대하는 제기동
주민들의 행동 역시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지적 능력이 다소 떨어지고 때로는 과잉행동을 보이는 발달장애인 수십 명이 주거지 인근 학교에
오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분명한 ‘위험 신호’로 받아들였다. 교육청에서는 주민들이 우려하는 안전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취한다고
했으나 그 말만 믿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교육청은 언제 또 말을 바꿀지 알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만 당한다, 세월호 참사가
알려주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위험한 발달장애인이 우리 동네에 들어오기 전에 사전 차단해야 한다. 그것이 나와 우리 가족을 지키는 길이다…
주민들이 갖고 있는 논리구조는 이런 것이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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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복지
2016.01.21 10:26
안전 책임의 사유화 시대, 발달장애인 공포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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