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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굿판 소리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대통령은 개인사를 넘어 공적 영역에서 아버지의 혼을 추도하려 하고 당신을 따르지 않는 국민들을 한 명씩 지목하며 ‘비정상적인 혼(魂)’이라며 정상과 비정상을 수없이 가르고 배제한다. 그리고 그 비정상적인 혼이라고 명명한 국민들에게는 살의가 담긴 무자비한 살수포가 집중적으로 꽂혔다. 이것은 전적으로 한 나라의 수장이 아니라 어느 마을의 무당이나 할 법한 언어구사다. 아니 말을 잘못 했다. 이것은 무당조차도 쉽게 하지 않을 법한 표현이다. 최소한 무당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케 하기 위해 굿판에서 쉬지 않고 춤을 추지 않은가.


    이러한 대통령에 발 맞춰 사회 곳곳에서는 ‘억울한 혼’들을 다시 불러내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그 혼들에 ‘건국의 아버지’, ‘산업화의 아버지’, ‘민주화의 아버지’ 등 수많은 이름들이 붙여지고 있다. 친일파, 독재자들에게 내려진 역사적 언도를 손바닥 뒤집듯 왜곡하고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 행사에서 ‘우리나라를 빛낸 위인’ 곡조에 맞춰 어린이들에게 반공사상을 노래하게 하는 엽기적인 일들이 이어진다. 그 맞은편에는 김대중, 노무현으로 표상되는 민주화의 아버지들이 자주 거론된다. 21세기판 제정일치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는 바로 대한민국일 것이다. ‘아버지’들은 그 진혼곡에 맞춰 비척비척 일어난다. 햄릿의 유령처럼 그들은 한국 사회를 끊임없이 배회하고 후세대들에게 속삭인다.


    이렇듯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아버지’들은 그들의 부름에 다시 호출되고 조명된다. 영화 배급사 CJ에서 상극처럼 보이는 <변호인>(양우석 감독, 2013)과 <국제시장>(윤제균 감독, 2014)이 차례로 나온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두 진영에서 찾아 헤매는 ‘아버지’들은 실상 똑같은 팔루스(Phallus)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눈물을 짜냈고 그 눈물을 받아 마시며 다시 우리 위에 군림한다. 바로 그 팔루스는 신파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전과는 다른 것이 있다면 물리적인 억압뿐만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억압, 즉 정신적, 도덕적 억압까지 겹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틀 안에 짜여진 언어와 사고들이 우리의 감정이나 행동을 조정하고 지배하는데 그 억압은 워낙 미세하고 촘촘히 구조화되어 있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한 진보(이 용어를 쓰는 것이 조심스럽지만)를 원한다면 근본적인 견지에서 사고체계와 도덕체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요청된다.1)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아버지’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451210592-84.jpg 영화 <국제시장>(왼쪽)과 <변호인>(오른쪽)의 한 장면.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아버지’가 있다. 그 ‘아버지’는 산업화의 역군도 아니요, 민주화 투사도 아니다. 그저 발정기의 수캐와 암캐를 동네 뒷산으로 끌고 가 흘레붙게 하는 개흘레꾼(개를 교미시켜주는 사람 _ 편집자 주)이다. 그런 아버지를 기억 속에서 다시 소환하는 아들은 환희와 우수가 아닌 비감(悲感)어린 어조로 부르짖는다. 그 이야기는 바로 김소진의 단편 「개흘레꾼」(『열린 사회와 그 적들』, 문학동네, 2014에 수록)에서 비롯된다.


    아 아버지! 당신이 정녕 나의 아버지이십니까! (208쪽)


    나를 절망적이고 자포적인 몸짓으로 인도했던 것은 바로 아버지의 이런 행위들이었다. 수치스러웠다고 고백해야만 한다. 개흘레꾼이라니! 바로 내 아버지 얘기인 것이다. (211쪽)


    사실 개홀레꾼 아버지의 소환은 ‘나’의 자의가 아니라 대학 시절 학생운동과 문학운동 서클 활동을 같이 했던 장명숙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는 장명숙의 난데없는 연락에, 난데없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아버지들’의 소환과는 전혀 다른 맥락을 띠고 있다. 전자는 호명하는 주체와 호명되는 대상의 암묵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반면 후자는 그런 것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억누르고 있었으나 장명숙의 연락으로 촉발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헐거운 연결고리는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나’의 애증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준다. ‘나’의 아버지는 80년대의 언어, 아니 전(全) 언어를 통틀어서도 떠오르지 않는 잉여의 존재이다. 소설 중반에도 나오지만 90년대 “어느 노회한 평론가”(김윤식)의 한국 현대소설에 대한 진단처럼, “아비는 종이었다”라는 명제와 “아비는 남로당이었다”라는 명제 사이에서 ‘나’의 아버지는 어느 명제에도 정의되지 않는다. ‘나’는 그 앞에서 당황스러워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아비는 숙명의 종도, 그리고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남로당이었다고 외칠만한 위치에 있지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또다시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것이다. (212쪽)


    사실 두 명제의 간극은 빙하 속 크레바스와 같아서 저 깊고 어두운 심연에는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빨려들어 갔던가. 비록 ‘나’의 아버지처럼 이름 없는 그들은 너무나 비루하고 초라할지라도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서로 사랑하거나 증오하며 너끈히 삶을 이어왔을 것이고 지금도 존재할 것이다. 분명 <국제시장>의 ‘덕수’들과 <변호인>의 ‘우석’이들은 존재했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 외에도 이름 없는 타자들 또한 이 땅에서 살아냈다는 것이다.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한국 현대사는 수많은 이들을 끌어안았지만 이와 동시에 수많은 이들을 경계 밖으로 내몰았다. 이 ‘벌거벗은 생명’들은 오늘도 우리의 주위를 소리 없이 맴돌고 있다. 어쩌면 우리들 또한 벌거벗은 생명이 되어 죽음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의 주변을 서성거릴 수도 있겠다. 이 지옥의 묵시록을 끝내려면 먼저 우리의 언어로 우리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저들의 이데올로기와 표상 따위가 아닌 우리들의 이데올로기로, 우리들의 경험과 체험에서 비롯되는 언어로 나와 너를 표현하고 이 세계 밖의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홀레꾼’ 아버지와 그처럼 자신을 스스로 정의할 수 없는 타자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한다.


    1451210889-16.jpg 김소진의 단편 「개흘레꾼」이 실린 소설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문학동네, 2014 또한 「개홀레꾼」은 자본주의의 선연한 징후를 넌지시 드러낸다. 그것은 아버지가 겪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서 나타난다. “아버지는 애초부텀 사상 따위와는 먼 사람”이었고 북에는 부모님과 갓 결혼한 아내, 미처 이름조차 확인하지 못했던 갓난아이를 두고 미군의 포로가 된다.(226쪽)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아버지는 포로들의 돈 관리를 맡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는 돈으로 국방군 보초의 감시를 피하고 민가에서 여자를 사는 등 일반적으로 알려진 포로수용소와는 전혀 다른 체험을 한다.(226-7쪽) 그런데 아버지가 체험했던 포로수용소에서의 폭력은 바로 ‘돈’에 기인한다. 포로들의 돈 보따리를 노린 우익 감찰관들은 독일 셰퍼드를 대동한 채 성기를 거세하겠다면서 아버지를 위협한다. 그 때 느꼈던 거세공포증은 훗날 아버지가 쌀집 주인 아들 원석의 개, ‘히틀러’를 잃어버리는 데 주요한 원인을 제공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아버지의 죽음 공포는 정치적 지향점에 의해 기인한 것이 아니라 포로들의 코 묻은 돈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써 아버지의 전쟁 체험 서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기존의 한국 전쟁의 서사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위치한다. 이러한 상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위주체들끼리의 물고 물리는 폭력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회의 언어는 지배계급의 언어인 탓에 폭력을 조장하는 구조적 모순은 쉽게 은폐되고 하위주체들은 서로 반목한다.


    재물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난 그때처럼 깨달은 적이 없어. (230쪽)


    어린 ‘나’에게 털어놓는 아버지의 소회는 너무나도 하찮고 비루하다. 그러나 그 하찮음은 어떤 이론서적과 어떤 운동가들의 틀에 갇힌 이데올로기보다도 리얼리티가 생생하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도 더욱 몸에 밀착된 경험에서 나오는 삶이기 때문이다.


    「개홀레꾼」은 ‘나’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기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가늠할 순 없지만 ‘나’의 소설은 아버지를 “애비는 종이었다”와 “애비는 남로당이었다”라는 명제를 넘어 구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거기까지 도달하려면 숱한 좌절과 고뇌가 뒤따를 것이다. 그 작업은 여태껏 써오던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언어와 통찰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시작된 한국사 전쟁이 지루하리만큼 계속되고 있다. 불통 정부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쉼 없이 몰아붙이고 있고 그에 반발하여 ‘대안’ 역사교과서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  국가권력에 맞선 대중 지성의 움직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이 싸움의 구도가 민족주의자와 친일파, 혹은 민주화 세력과 군부독재 세력의 구도로 굳혀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얼핏 보기엔 적과 동지가 너무 명확해 보이는 것 같지만 실은 그 경계는 아주 불투명하고 흐릿해서 구분조차 쉽게 할 수 없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거대한 역사 속 크레바스에 빠진 주체들의 삶을 복원하고 우리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저항의 몸짓을 펼쳐보이는 일일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정상성 담론이 지겹도록 울려 퍼지는 오늘날, 그의 소설을 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소망일까?


         *       *       *

    각주 1) 김항, 「밥풀때기와 개흘레꾼을 위한 레퀴엠」, 『문화과학』, 2015 여름호(통권 82호) 참고


     

     

     

     

    1451211368-61.jpg 홍성훈의 난장판

    뇌병변 1급 장애인.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서정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열등감이었다'. 일반 초중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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