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해치마당, 매서운 겨울바람이 들이치는 이곳에서 동영상 한 편이 상영되고
있다. 동영상에 등장한 남자의 함박웃음이며 찡그리는 표정이 화면을 타고 생동감 있게 넘실댄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는 5년 전
겨울,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서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보장과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 퇴진을 요구하는 농성 과정에서 폐렴을
얻어 생을 달리한 우동민 열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해마다 죽은 그의 이름을 찾는다.
4일
서울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자립생활운동가 우동민 열사 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서울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우동민 열사 다섯 번째 추모제가 열린 4일, 사람들은 그 이유를 "그가 생명을 던져가며 이루고자 했던 바가 아직도
현실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우 열사가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어느 정도 토대가 마련됐으나 '활동보조
하루 24시간'은 여전히 미비하다. 아니, 최근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복지재정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활동보조 24시간 예산은 예산 삭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난히 추웠던 2010년 그해 연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를 비롯한 단체들은 장애인활동지원법의 올바른 제정과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인권위를 점거했다. 우 열사는 당시 점거농성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활동가다. 그러나 인권위는 전기와 난방을 중단하고
음식반입마저 제한했다. 결국 우 열사는 농성 중 폐렴 증세로 응급호송됐고 이듬해 2011년 1월 2일 급성폐렴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인권위는 아직도 그의 죽음 앞에 사과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인권위는 이성호 인권위원장 취임 이후, 우 열사의
사망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장애계와의 원만한 합의를 바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추모제에 모인 사람들은 이러한 인권위의 태도에 더욱
분개했다. 문애린 전장연 활동가는 "밥을 제대로 못 먹어 가면서도 우리가 자리를 뜨지 않았던 이유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였다"면서 "그런
우리를 인권위는 어떻게 취급했나. 난방도 전기도 끊고, 심지어 활동보조인의 출입까지 제한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 열사의 죽음에 인권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원교 우동민열사추모사업회 회장은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은 아무 문제 없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면서 "우 열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아무 상관 없는 현 이성호 인권위원장 이름으로 조화를 보내느니,
'유감'을 표하느니 하는 인권위의 태도에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사람들은 우 열사를 우직하고 소박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우동민 열사와 함께 일했던 박현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열사'라는 칭호가 주는 거창한 이미지와 달리, '동민이 형'은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이틀 만에 다이어트를 포기하거나 술을 좋아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투박하고 평범했던 '동민이 형'이 죽음까지 불사하고
투쟁할 만큼, 그가 주장했던 바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자 강한 정당성을 가진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박김영희 장애해방열사‘단’
대표는 "그는 사람들 앞에서 화려한 발언을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늘 투쟁의 현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고 전했다. 박김
대표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빛내는 우 열사의 정신을 우리가 더 많이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장애계는
새해 들어 첫 추모제를 치렀다. 우 열사를 시작으로 추모제는 일 년 내내 이어질 것이다. 그만큼 기억해야 할 이름이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2016년, 대한민국은 죽어간 이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진실하게 화답할 것인가. 우동민
열사 5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 추모제
참석자들이 우동민 열사에게 헌화하는 모습.
광화문 해치마당, 매서운 겨울바람이 들이치는 이곳에서 동영상 한 편이 상영되고
있다. 동영상에 등장한 남자의 함박웃음이며 찡그리는 표정이 화면을 타고 생동감 있게 넘실댄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는 5년 전
겨울,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서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보장과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 퇴진을 요구하는 농성 과정에서 폐렴을
얻어 생을 달리한 우동민 열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해마다 죽은 그의 이름을 찾는다.
4일
서울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자립생활운동가 우동민 열사 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서울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우동민 열사 다섯 번째 추모제가 열린 4일, 사람들은 그 이유를 "그가 생명을 던져가며 이루고자 했던 바가 아직도
현실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우 열사가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어느 정도 토대가 마련됐으나 '활동보조
하루 24시간'은 여전히 미비하다. 아니, 최근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복지재정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활동보조 24시간 예산은 예산 삭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난히 추웠던 2010년 그해 연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를 비롯한 단체들은 장애인활동지원법의 올바른 제정과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인권위를 점거했다. 우 열사는 당시 점거농성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활동가다. 그러나 인권위는 전기와 난방을 중단하고
음식반입마저 제한했다. 결국 우 열사는 농성 중 폐렴 증세로 응급호송됐고 이듬해 2011년 1월 2일 급성폐렴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인권위는 아직도 그의 죽음 앞에 사과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인권위는 이성호 인권위원장 취임 이후, 우 열사의
사망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장애계와의 원만한 합의를 바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추모제에 모인 사람들은 이러한 인권위의 태도에 더욱
분개했다. 문애린 전장연 활동가는 "밥을 제대로 못 먹어 가면서도 우리가 자리를 뜨지 않았던 이유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였다"면서 "그런
우리를 인권위는 어떻게 취급했나. 난방도 전기도 끊고, 심지어 활동보조인의 출입까지 제한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 열사의 죽음에 인권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원교 우동민열사추모사업회 회장은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은 아무 문제 없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면서 "우 열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아무 상관 없는 현 이성호 인권위원장 이름으로 조화를 보내느니,
'유감'을 표하느니 하는 인권위의 태도에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사람들은 우 열사를 우직하고 소박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우동민 열사와 함께 일했던 박현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열사'라는 칭호가 주는 거창한 이미지와 달리, '동민이 형'은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이틀 만에 다이어트를 포기하거나 술을 좋아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투박하고 평범했던 '동민이 형'이 죽음까지 불사하고
투쟁할 만큼, 그가 주장했던 바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자 강한 정당성을 가진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박김영희 장애해방열사‘단’
대표는 "그는 사람들 앞에서 화려한 발언을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늘 투쟁의 현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고 전했다. 박김
대표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빛내는 우 열사의 정신을 우리가 더 많이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장애계는
새해 들어 첫 추모제를 치렀다. 우 열사를 시작으로 추모제는 일 년 내내 이어질 것이다. 그만큼 기억해야 할 이름이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2016년, 대한민국은 죽어간 이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진실하게 화답할 것인가. 우동민
열사 5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 추모제
참석자들이 우동민 열사에게 헌화하는 모습. 사진
속에서 우동민 열사가 미소 짓고 있다. 그 앞엔 하얀 국화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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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서 우동민 열사가 미소 짓고 있다. 그 앞엔 하얀 국화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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