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매매를 위해 장거리 여행에 나선 장애남성들
영화는 해변을 달리는 여성들의 가슴골을 비롯하여 신체의 일부분을 클로즈 업 해서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들은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는 필립의 시점 숏이다. 필립은 척수신경장애로 얼굴과 엄지, 검지만 움직일 수 있다. 그에겐 이웃에 사는 장애인 친구들이 있다. 요제프는 시력을 거의 잃은 장애인이다. 지팡이로 보행이 가능하며, 왼쪽 눈에 약간의 시력이 남아있어 확대경을 대고 사물이나 글자를 흐릿하게 식별할 수 있다. 라스는 수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아마도 종양이 신경을 눌러 하지마비가 온 것으로 보인다.
▲'아스타 라 비스타' 한 장면. 왼쪽이 요제프, 가운데 라스, 오른쪽 필립. |
세 친구들은 모두 혈기왕성한 청년들로 여성의 몸을 은근슬쩍 훔쳐보거나 와인을 맛보며 품평하기를 좋아한다. 이들은 ‘야동’을 즐기지만, 한 번도 진짜로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다. 필립이 스페인에 있는 장애인을 위한 고급 성매매 업소의 명함을 보여주자, 친구들은 부모와 떨어져 장거리 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에 부푼다. 친구들은 여행계획을 짜고 전문 간호사를 섭외하여 부모들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라스의 종양이 커졌다는 의사의 말에 여행계획은 무산된다. 하지만 라스는 생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밀어붙인다.
2. 장애인은 착한 존재도 아니고, 무력한 존재도 아니라오.
세 친구는 결국 부모 몰래 여행을 떠난다. 전문 간호사는 사람이 바뀌었다. 거구의 여성 클로드를 보고 이들은 뜨악해한다. 성매매를 위한 여행에 여성과 동행하는 게 내키지 않는데다가, 뚱뚱한 여성에 대한 외모주의적 편견이 작용한 탓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다 클로드에게 불어로 통역해주는 요제프를 제외하고, 두 사람은 클로드에게 벨기에말로 혐오와 조롱이 섞인 막말을 해댄다.
영화가 묘사하는 장애인의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들은 착한 장애인이 아니다. 전신이 마비된 필립은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자신이 장애인으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더 까칠한 성격을 내보인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유치한 갑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를 믿고 의지하게 되었을 땐 태도가 달라진다. 필립과 라스는 외국인에게 공연히 시비를 붙거나, 여자들을 희롱하기도 한다. 혈기 넘치는데다 철없는 젊은이들로 성적 욕구불만이 가득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다양한 장애의 상태를 보여준다. 흔히 비장애인과 대비되는 장애인이라는 범주에 여러 장애인들을 집어넣고 사고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보다 장애인들 간의 차이가 더 크다. 또한 영화는 장애인들이 지닌 능력에 주목한다. 이들은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중증장애인들이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능력으로 서로를 보완한다. 필립은 전신이 마비되었지만, 팀의 리더처럼 행동한다. 요제프는 필립을 눕히거나 앉히는 일을 할 수 있다. 장애가 없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클로드의 질문에 와인 양조장을 하고 싶다고 답한 필립은 와인 맛과 향을 보는 일은 지금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요제프는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 라스는 잘생긴 얼굴로 모르는 여자의 호감을 얻는 데 성공한다. 영화는 이들이 각자 소원을 성취하는 장면을 판타지적으로 보여준다.
3. 장애는 죽음이 아닌 삶의 일부이다
영화는 장애를 지독한 불행이나 절망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낸다. 또한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장애인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준다. 클로드는 “나는 장애가 없잖아”라 말하지만, 그가 뚱뚱한 여성으로서 겪는 천대나 전남편의 외도로 인한 상처나 가석방자라는 신분은 그에게 장애나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장애는 특별한 게 아니라, 여성이나 외국인이나 전과자와 같은 소수자적 정체성과 결을 같이 하는 사회적인 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장애가 죽음이 아닌 삶에 속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을 영위하고 삶을 기약할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절박한 사람은 라스이다. 그의 암은 진행 중이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아스타 라 비스타’라는 제목은 스페인어로 ‘다음에 또 보자’는 뜻이다. 무심코 주고받는 인사말이지만, 이 안에는 삶이 지속된다는 확신이 담겨있다. 우리는 흔히 중증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느니 혹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등의 말을 한다. 하지만 전신마비로 꼼짝할 수 없는 필립에게 라스가 멱살을 잡고 “너는 죽어가지 않잖아!”라고 오열할 때, 이러한 말들이 얼마나 경박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삶과 죽음의 차원에서 본다면, 장애는 죽음이 아닌 분명한 삶의 일부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클로드와 동행하는 요제프에게 필립이 “아스타 라 비스타”라고 경쾌하게 인사하듯이, 삶은 지속된다. 장애가 있든 없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