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중구청 앞에서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쪽방촌 주민들이 퇴거를 당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중구청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 |
건물주의 재개발과 용도변경으로 밀려난 남대문로 5가 쪽방촌 주민들이 아무런 사후대책도 보장받지 못해 집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이에 15일 중구청 앞에서 2015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기획단)의 주최로 중구청을 규탄하고 쪽방 주민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날 선 바람에 이불 속을 파고드는 겨울. 살을 에는 거리를 피해 몸 하나 눕기에도 벅찬 쪽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단촐한 주거공간이어도 거리나 지하철 같은 '공공공간'이 아닌 세상 속에 하나 남아있는 나의 공간이기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렇게 도시 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1평 남짓한 쪽방에서 살아온 이들이었다.
거리 노숙을 하는 이, 돈이 없어 다른 주거를 쳐다볼 수도 없는 이들에게 쪽방은 '최후의 주거지'이다. 그러나 이런 거리 노숙을 예방하는 마지막 주거공간을 높은 빌딩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바꾸려는 재개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남대문로 5가에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말 쪽방촌 주민에게 '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니 퇴거하라는 날벼락 같은 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쪽방촌 주민들이 규탄집회에 나와 중구청을 규탄하는 모습. 홈리스 주거권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남대문로 5가 지역은 현재 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고층의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남대문로 5가에 있는 13개의 건물, 281개의 방 중 절반에 해당하는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퇴거당했다. 그러나 쪽방촌을 나온 이후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이에 서울시는 10월 중순 중구청에 주거상실이 우려되는 주민에 대한 주거이전 지원대책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주민들이 쪽방촌에서 내쫓긴 이유는 명목상 '안전진단'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재개발이었다. 지난 8월 11일 서울시 건축위원회는 이 지역에 대한 '도시환경정비사업'을 통과시켰다. 남대문로5가에 업무시설, 판매시설, 국제회의시설 등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의 착공예정일은 당장 2016년 6월이다.
이런 상황에서 갈 곳이 없어 그동안 쪽방에 버텨왔던 쪽방 주민들은 물과 전기가 끊기자 결국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쪽방상담소나 구청에서 상담조차 받지 못해 주거지원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해 기획단은 중구청에 연락을 취했지만 "주민 전원의 이주는 끝났으며 소정의 보상으로 밀린 월세를 받지 않기로 했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퇴거한 쪽방 주민들의 현황과 지원대책도 질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고작 "주민들이 이주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 등을 안내하며 이주를 도왔다"였다. 그러나 기획단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중구청에서 긴급지원한 사례는 2012년 3월부터 현재까지 단 3건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에 영등포구 173건, 서대문구 18건으로 집계됐다. 중구청이 서울시의 25개 구 중 가장 많은 거리 노숙 인구와 쪽방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극히 적은 수인 것이다.
▲당사자 발언 중인 김정호 동자동쪽방 주민 |
김정호 동자동쪽방 주민은 "10년, 20년을 쪽방에서 살았어도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가보다 하고 거리로 내쫓기는 신세"라며 "산 사람 목숨인데 살게만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사회를 맡은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은 "요즘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은 끝없이 밀려나다 결국 거리에 나앉는다"며 "대책 없이 주거공간을 뺏긴 이들은 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기획단은 중구청 관계자와 면담을 갖고, 쪽방촌 지역 개발이나 건물주의 용도변경으로 인해 쫓겨나는 이들에 대한 대응 매뉴얼 작성 및 지속적인 사례관리, 추적조사, 주거 지원대책 등의 내용을 담은 요구안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