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병원이 부적절한 의료행위로 수십 명에게 C형 간염을 전파해 물의를 빚고 있다. 그런데 병원 원장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이 장애인 의사의 자격 논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말 이번 사건이 의사가 '장애'로 인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일까?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경과를 보면 2008년부터 지난 11월 29일까지 서울 양천구에 있는 다나의원 방문자 중 76명이 C형 간염 양성 반응을 보였다. C형 간염은 혈액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돼 발병하며, 백신이 없어 치료가 어렵고 장기간 방치하면 간경화나 간암을 유발한다.
이러한 수치는 같은 기간 방문자 2268명 중 779명을 대상으로 한 검사 결과로, 추후 검사가 진행될수록 확인된 감염자 수는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병원은 수액 치료 등에서 주사기와 바늘을 재사용해왔으며, 질병관리본부는 주사기 등을 통해 감염된 혈액이 전파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병원 원장은 2012년 교통사고로 장애(중복 2급-뇌병변 3급, 언어 4급)를 얻은 후 주사기를 재사용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병원은 주로 의사 면허가 없는 원장 부인과 함께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사건의 원인이 장애인 의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지나날 19일 이번 사건이 밝혀진 후 일부 언론은 ‘“'집단 C형간염' 원장, 뇌손상·수전증 있었다”’(11월 26일, 조선일보), ‘‘C형 간염’ 다나의원 환자들 증언 “어눌한 말투에 손 떨어… 의사 맞는지 불안”’(11월 28일, 동아일보) 등 원장의 장애를 강조해 진료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문제가 커지자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9일 의료 면허 관리체계 강화 방안을 통해 ‘의료인 면허신고제 개선 협의체’를 구성하고 면허 신고 시 의료법상 의료인 결격사유 점검 근거와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없는 건강상태 판단기준 및 증빙방안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한의사협회(아래 의협)는 30일 성명을 통해 복지부의 면허 관리체계 강화 대신 “환자를 진료하는 데 있어 판단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부 치매, 정신질환, 뇌질환 등의 심신미약상태 회원들에 대해 전문가적 소견을 바탕으로 자율 식별 및 정화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 협회에 주어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원장의 장애가 이번 사건의 발단이라고 보는 이러한 인식은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질병관리본부는 11월 26일 조사에서 병원에서 일하던 전 종사자로부터 “2012년 이전에도 (다나의원에서) 주사기 재사용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게다가 혈액을 통한 감염을 막기 위해 주사기를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상식으로, ‘고도의 판단능력’이 필요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질병관리본부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C형 간염 예방수칙 등에서 안전하지 않은 주사기의 사용을 해서는 안된다고 전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원장 대신 병원을 관리했던 부인도 간호조무사 출신이며 병원에는 원장과 부인 이외의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는 공중보건학 등 신규·보수 교육 과정에서 감염 예방을 위한 사항들을 배우게 되어 있다.
오히려 다나의원 관계자들이 주사기를 여러 번 사용한 것은 비용 절감이나 간편함 등을 추구하려고 일부러 잘못을 저질렀거나, 의료종사자들이 감염 예방에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병·의원 관리나 감염 예방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보건 당국의 책임이 크며, 의사의 신체·정신적인 상태로 자격을 제한할 방안은 본말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이 문제를 단순히 원장의 판단력, 윤리의 문제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라며 “다나의원은 주사제 처방이 평균 의원보다 5배 이상 높았다. 관할 보건소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 정책국장은 정부의 방안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며 “실제 진료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의 진료를 막을 수는 있겠으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나 노인들이 의료 면허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부작용을 우려했다.
정 정책국장은 “사지 멀쩡한 사람만 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차별이며, 이런 기준을 적용한다면 의료 현장에 있는 경험 있는 장애인들이 환자를 진료할 기회를 박탈한다”라고 비판했다.
갈홍식 기자 redspirits@bemin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