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홈리스, 철거민, 노점상 등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다가오는 대선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는 25일 늦은 2시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가난한 이들의 정치를 말하다’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의 시각에서 본 대선정책 평가 및 요구안에 대해 선언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대선정책에 대해 발표를 맡은 빈곤사회연대 강동진 집행위원장은 “가난한 이들의 숫자가 계속 줄지 않고 늘고 있으며, 소득불평등이 IMF 이전에 최소 3, 4배였다면 현재는 열 배 이상 차이 난다"라면서 "자살률은 OECD 최고이며 특히 노인자살률이 굉장히 높고 10대 청소년 사망 이유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자살”이라고 설명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지난 10년간 복지제도가 확대되었다고 하나 그 기간 소득불평등, 자살률은 엄청나게 늘었다”라고 강조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맞춤형 복지, 일하는 복지, 지속 가능한 복지 등 이명박 정부와 현재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해방 이후 40년 동안 이뤄진 복지를 잔여적 복지라고 평가하는데, 맞춤형 복지 내용을 살펴보면 잔여적 복지와 다르지 않다”라며 “일자리를 통해 소득 늘리고 소득으로 복지서비스를 실천하겠다는 일자리 복지는 일자리가 곧 복지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일자리로 생활의 많은 부분이 해결돼야 하나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현실에서 드러났다”라고 지적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현재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간신히 죽지 않을 만큼의 생계급여를 주고 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이때의 임금은 수급자보다 조금 더 버는 수준으로 이 외에 다른 대책은 없다”라면서 “노인 일자리 확대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정부에서 제시하는 노인 일자리 한 달 임금은 많아야 40만 원으로 기초수급액과 비슷한데 이런 일자리가 복지냐.”라고 꼬집었다.
강 집행위원장은 “안철수 후보가 노인 빈곤을 없애겠다며 노인 일자리 확대와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이야기했으나, 기초노령연금은 현재 한 달에 9만 원으로 두 배 인상해도 18만 원”이라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노인빈곤을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지속가능한 복지 기저에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적자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며, 이는 복지가 경제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철저히 통제되어야 한다는 성장우선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라면서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복지확대를 제한하고 복지지출을 축소하려는 시도로 변절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강 집행위원장은 “경제규모가 더 늘어나지 않을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늘어나고 1인 가구에 대한 복지 요구는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러한 현실에서 보편적 권리에 대한 대선 요구안을 다음 네 가지로 정리했다.
△빈곤은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 아니며 국가와 사회가 해결하라. |
강 집행위원장은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최저생계비 계측방식을 개선해서 상대적 빈곤선을 도입해야 한다”라며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 높은 주거비 부담을 없애기 위해 공공주택의 공급을 확대하라”라고 요구했다.
이어서 ‘내가 대통령 후보라면’이라는 동영상이 상영됐다. 동영상 속에는 서울역 홈리스, 장애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나와 자신의 입장에서 ‘만약 내가 대통령 후보라면’이란 주제로 자신이 국민에게 약속하고 싶은 공약에 대해 한 명씩 이야기했다.
“추위를 피해 잠깐 쉬는 것도 서울역에서는 막는다. 추위를 잊기 위해 술 먹는 우리를 이해할 수 있나?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홈리스들의 인권과 모든 것을 존중해서 이끌어 나가겠다.” - 이대진 씨(서울역 홈리스)
“대통령이 된다면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하겠다. 장애인콜택시, 장애인연금, 활동보조 등을 못하게 하는 불합리한 제도를 없애고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 - 박홍구 씨(장애인)
“자본의 이윤착취로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리고 있다. 정규직도 명예퇴직 등의 이유로 자본과 경제 위기 때마다 내몰리는데 이러한 노동자들의 문제를 철폐해야 한다.” - 김덕중 씨(쌍용차 해고노동자)
“현재 기초생활수급비를 45만 원 받고 있는데 이 돈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 기초수급비는 최소 65만 원은 되어야 한다. 수급비를 현실화하고 부양의무제를 철폐하겠다.” - 이종대 씨(기초생활수급자)
“세입자들이 억울하게 재개발로 길거리에 쫓겨나지 않게 하겠다. 용역 깡패를 동원한 강제철거를 없애겠다.” - 김명희 씨(철거민)
“노점상들이 규탄받지 않고 편하게 장사할 수 있게 하겠다. 노점상 내쫓는 용역 깡패를 없애고 그 비용을 복지사회에 쓰겠다.” - 김기순 씨(노점상)
“서울역을 비롯해 청량리, 용산역 등에 사는 사람들의 쪽방촌을 제일 먼저 개선하겠다.” - 이서일 씨(동자동 쪽방촌) |
영상 상영에 이어 기초생활보장법·장애·노점·철거·노숙·쪽방·자활·건강 등 분야별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 공동대표는 “따라서 장애등급제는 폐지돼야 하며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빈곤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부양의무제 역시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라면서 “이 외에 장애인계에서는 장애인권리보장법, 발달장애인법, 수화언어 및 농문화지원법 제정 등을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전국철거민연합 정심례 활동가는 “용산에서 5명이 죽은 후 법이 바뀌리라 믿으며 열심히 투쟁했으나 여전히 법은 바뀌지 않고 있다”라면서 “선대책·후철거가 이뤄져야 하며 순환식 개발을 정착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홈리스행동 황성철 활동가는 “지난 6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는데, 여기서 부정적
낙인이 부여된 ‘노숙인’이란 용어는 폐기하고 ‘홈리스’ 개념을 도입해 낙인을 제거하고 정책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라며 “법률에서 주거, 급식,
의료, 고용의 복지서비스가 구속력 없는 임의조항인데 ‘해야 한다’라는 의무조항으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자활협회
박용수 사무처장은 “기초생활을 넘어 빈곤하지 않게 삶을 영위하자는 게 자활의 취지이나 현재 자활은 신체 건강하고 노동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기초생활을 무료로 보장하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다”라면서 “따라서 기초생활을 넘는 사업은 시행되지 못한 채,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활에 참여하지 않으면 조건 불이행이라는 행정절차로 수급비가 깎이거나 제한당하는 등 기초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 자활사업의 참여대상을 전체
취약계층으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건강사회네트워크 김정숙 활동가는 “교육, 노동, 의료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적 수단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모든 수단의 지원이 이뤄져야 하나 장기적 비전을 내세우는 대선후보가 없다”라면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의료급여 대상자를 확대하고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결손처분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참여자들은 각자가 원하는 요구안들을 구호로 외치며 두 시간여 동안 이어진 토론회를 마쳤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