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2.09.17 14:38

장애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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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처럼 생긴 부부젤라를 기억하시나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 응원도구인 부부젤라가 내는 큰 소리 때문에 많은 화제와 논란을 낳았습니다. 심지어 부부젤라로 내는 소리의 강도가 전기톱 소음보다 커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부부젤라를 옆 사람의 귀에 대고 불면 폭력행위로 처벌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부부젤라 이전에 아파르트헤이트(격리, 분리를 뜻하는 아프리카 말)로 불리는 인종차별정책으로 이미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친 나라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인종차별정책을 제도화할 무렵에 이미 미국, 호주 등 다른 나라에도 명백한 인종차별정책이 있었지만, 유독 이 나라가 악명이 높았던 것은 국가 차원에서 인종차별정책을 만들고 이를 오래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만방에 소수 백인만을 위한 나라라고 선포한 뒤 법으로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주거지를 분리하고, 해수욕장도 따로 가도록 했습니다.

▲지난 13일 장애인 숙박시설 가로막는 양양군수 차별행위 긴급진정에 앞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7개 단체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번 주 장애인계 소식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떠올리게 합니다. 지난 1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7개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진정을 했습니다. 서울시가 강원도 양양군 하조대 해수욕장에 짓고자 하는 장애인숙박시설 하조대 희망들이 양양군의 소송과 일부 주민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양양군은 '하조대 희망들'이 장애인숙박시설이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이라고 우기며 건축협의를 취소했다가 1심 재판에서 졌음에도 항소로 재판을 이어가며 건립을 계속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공성을 추구해야 할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고 일부 주민 또한 장애인차별에 동조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기자회견에 참석자들의 지적이었습니다.

서울시가 '하조대 희망들'을 건립하기로 한 것은 1994년부터 운영한 장애인 무료해변캠프가 일부 주민의 반대로 그동안 빈번하게 장소를 옮겨 다녀야 했고, 장애인 무료해변캠프가 여름철에만 운영돼 다른 계절에는 장애인들이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바닷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국의 모든 해수욕장에 장애인 편의시설과 숙박시설이 갖춰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하조대 희망들과 같은 별도의 장애인숙박시설이 우선 필요했고,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 이를 추진한 것입니다. 하지만 양양군의 반대로 하조대 희망들이 내년 2월까지 완공되지 않는다면 집행하지 못한 국비 22억 원을 반납해야만 합니다. 그럼 건립은 무기한 연기되거나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로 양양군청은 '하조대 희망들' 건립에 돈 한 푼, 땅 한 치 내놓은 것 없습니다.

이에 인권위에 긴급 진정을 한 장애인단체들이 다음 주 양양군청을 항의방문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조대 해수욕장이 비장애인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부부젤라가 내는 소리만큼 큰 목소리로 장애인당사자들이 직접 전달할 것 같습니다. 양양군청이 과연 그 목소리를 귀담아들을지, 아니면 모른 척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고 장애인차별에 동조한 지방자치단체라는 악명을 이어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한편 이에 앞서 유사한 사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지난 4일 도봉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장애인복지관 건립 반대 서명을 받기 위해 승강기 안에 게시물을 붙였다가 장애인과 누리꾼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그 게시물은 집값 하락을 운운하며 장애인을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게시물은 구청 앞에서 집회 시위하는 장애인 단체들을 보면서 우리는 절대로 그런 시설이 보통사람들이 사는 이곳에 들어 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집회 시위하는 장애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비장애인과 격리, 분리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두 사건 모두 장애인을 분리, 격리시키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수백 개의 시설에서 수만 명의 장애인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역사회에서 분리,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비단 시설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도 분리, 격리되어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2일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열린 농아인 권리보장을 위한 100일 전국 릴레이 1인 시위 종료 기자회견 모습입니다.

지난 12일에는 농아인들이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 63일 농아인의 날부터 100일 동안 농아인 권리보장을 위해 전국에서 진행한 릴레이 1인 시위를 마무리하는 자리였습니다. 같은 날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안마사자격제도의 합헌 결정을 촉구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사는 농아인은 모국어에 해당하는 수화가 아니라 외국어에 해당하는 음성언어만을 유일한 언어로 쓸 것을 강요받고 있고, 시각장애인은 안마사 직종만을 유일한 직업으로 강요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강요의 결과는 결국 지역사회와 동떨어진, 분리와 격리 속에서 사는 삶입니다.

이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싸우고 이를 종식하는데 큰 역할을 한 넬슨 만델라가 한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1964년 내란 혐의 재판에서 최후 진술로 한 말입니다. 날짜를 보니 공교롭게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인 420일에 한 말이네요.

나는 일생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필요하다면 그런 소망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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