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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휠체어에서 길바닥으로 내려와 온몸으로 기어 행진하는 모습.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절박한 생존권 요구를 외면할 때 중증장애인활동가들이 택하는 투쟁 방식 중에는 기어가기 투쟁이 있습니다. 타고 있던 휠체어에서 내려 아스팔트 도로 위를 기어가면서 ‘장애인의 속도’를 날것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중증장애인활동가들의 이러한 투쟁은 자본이 요구하는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비장애인들에게는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죽비소리가 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자본의 속도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주지 않습니다. 중증장애인활동가들이 도로 위에서 보여준 ‘장애인의 속도’는 이내 ‘점거’가 되어 수차례 해산 명령이 내려집니다. 해산 명령 중간에는 친절하게도 ‘장애인의 속도’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비장애인이 불편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곁들어지기도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중증장애인활동가들은 이진경 교수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에서 정의한 철학적 개념인 장애자(폐를 끼치는 자)로 적나라하게 호명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그 책에서 모든 존재자는 다른 수많은 존재자에게 기대어 존재한다는 점에서 모든 존재자는 운명적으로 장애자라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중증장애인활동가들을 '폐를 끼치는 자'로 부르는 이들은 자신도 장애자임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거나,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수적 차이에 의해 만들어진 '문턱'을 고수하려는 편에 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문턱을 제거하려는 자와 문턱을 유지하려는 자 사이의 관계는 계급처럼 혁명적·집단적 운동을 통해 문턱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적대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장애인활동가들이 지난 14일 최중증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내용 등을 담은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복지부를 규탄하는 모습.

그런데 조만간 ‘장애인의 시간’에도 또 하나의 거대한 문턱이 놓입니다. 더구나 이 문턱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처럼 눈에 확 띄는 문턱이 아니라 장애등급제처럼 장애인과 장애인 사이를 의학적 판정이라는 틀로 가장하면서 실제로는 예산에 맞춰 임의로 나누는 문턱입니다. 그래서 그 문턱이 품고 있는 적대 관계를 사회적으로 환기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고 김주영 활동가 장례 투쟁 등의 과정을 통해 올해 새해 예산안에서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이 증액됨에 따라 복지부는 지난 6일 증액 예산분을 반영한 장애인활동지원 급여비용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습니다.

복지부는 그 개정안에서 최중증 기준을 충족하는 독거·취약가구 추가급여 대상자에 대한 추가급여량을 대폭 늘렸습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최중증 기준도 현행 400점 이상에서 410점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독거·취약가구 추가급여 대상자 중 최중증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은 월 80시간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지만, 앞으로는 월 250시간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게 됩니다. 반면 최중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월 20시간에 해당하는 급여만을 받습니다. 최중증 기준을 충족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무려 월 230시간, 하루 7~8시간에 가까운 시간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최중증 기준을 지금보다 10점 더 올려 새 인정조사표에서 사회환경고려영역으로 25점이 추가된 것을 사실상 무위로 돌려버렸습니다. 여기에 앞으로 있을 수급자격 재판정에서 예상되는 점수 하락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최중증 기준을 더 엄격하게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지부가 인정점수 410점 이상으로 정한 이 '최중증' 기준은 장애인의 필요와는 무관하게 예산의 논리에 따라 정한 것입니다. 장애인계에서는 인정점수가 300점 이상이면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한 장애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정점수 차이가 5점에 불과해도 인정점수가 405점인 사람에게는 월 20시간의 추가급여를, 410점인 사람에게는 월 250시간의 추가급여를 준다면 그 누구도 이것이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당장 서비스가 부족하면 생활 또는 생존이 어려운 장애인들은 어떻게든 높은 인정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정조사를 받을 때 가령 도움이나 조언이 부분적으로 필요한 행위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한 행위로 인정받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그러면 장애인들을 그런 상황으로 내몬 복지부는 인정조사에 ‘온정’이 깃들었다며 기준을 더 강화하려고 하겠지요.

문턱을 유지하려는 자로서 복지부의 이러한 태도는 스스로 발주한 장애인등록제도 개선 방안 연구 용역 최종보고서에서 장기적 과제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아 지난해 6월 29일 제출되었음에도 이를 공론화하지 않고,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민관합동으로 꾸려진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 회의를 2년 가까이 방기한 사실 등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장애등급 재심사로 장애등급이 하락해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기는 사례가 속출하던 지난 2010년에 몇몇 중증장애인활동가들이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닥친다면 복지부 앞에서 활동보조인이 없는 장애인의 24시간을 매일매일 고스란히 보여주겠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지금 추세대로 정부가 극소수의 장애인들에게만 서비스를 확대하는 식으로 마치 24시간 활동보조를 보장하는 것처럼 선전한다면 조만간 ‘장애인의 시간’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이런 투쟁이 등장하지 않을까요?

점점 그 시간이 다가오는 것만 같습니다. 아울러 24시간 활동보조를 보장하라는 요구에는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높은 벽처럼 느껴집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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