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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줄을 간신히 잡고

이미 아들 둘이 있는 상태에서 셋째를 임신한 엄마는 죽음을 선택하였다. 일찍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 갔기에 엄마도 깨어나고 아기도 무사했다.  태아를 위해 태교를 했어야 하는 시기에 아기는 생명을 위협받는 고난을 겪었던 것이다.

1973년에 셋째로 태어난 아기도 아들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약물중독으로 몹시 허약했다. 결국 6세에 척수종양암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하반신마비였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해야 먹고살 수 있었기에 어린 정호는 거의 방 안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았다. 도둑이 들어올까 봐 문을 잠그고 나갔기 때문에 그는 갇혀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8세가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엄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해야 했기에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고 그나마도 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할 때쯤 마침 대전에 특수학교인 성세재 활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2학년 때 전학을 갔다. 말이 전학이지 집을 떠나 특수학교 기숙사인 성세재활원에 입소된 것이다.

아, 나도 쓸모 있는 존재이구나


공연 모습. © 옥상훈 KIADA2017
그에게 그곳은 별천지였다. 그곳에는 다양한 장애 유형의 친구들이 있었다. 장애 정도도 심해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아이들, 두 가지 이상의 장애가 중복된 아이들, 그리고 자라지 않는 아이들, 그들은 장애 때문에 버려진 상태로 부모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집에 있을 때는 자기 혼자 세상의 모든 불행을 다 짊어진 듯 우울했지만 이곳에 오니 자기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은 꽤 괜찮은 장애인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가 달라졌다. 더 밝아지고 더 능동적으로 바뀌어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친구들을 돌봐 주게 되었다. 옆에서 누워 자던 친구가 소변이 마려우면 이불을 당겼다. 그 시간에는 생활재활교사가 없기 때문에 정호가 일어나서 오줌을 뉘어 주었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가 이불 당기기였는데 같은 방을 사용하는 친구들의 오줌 누기 때문에 그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지만 정호는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옆 친구의 이불 당기는 신호가 없어서 흔들어 보았는데 느낌이 보통 때와는 달랐다. 죽은 것이었다. 그때가 새벽 3시가 지난 시간이라서 아무도 친구의 죽음을 함께해 주지 못했다. 성세재활원에 있으면서 일곱 번 정도 친구들의 죽음을 경험했다. 어린 시절이지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버려진 아이들이 장애와 질병 속에서 죽어 가는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수없이 하면서 답을 찾으려고 하였다.

밥을 먹여 주고, 소변을 처리해 주고… 어찌 보면 하찮은 것 같아도 그 친구들에게는 살기 위해 너무나도 중요한 삶의 의식이었는데 그것을 어린 정호가 도와주었던 것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친구가 어느 날 정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참 좋은 친구야.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정호는 그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정호의 얼굴에 손을 살포시 얹고 만져 보았다. 그 친구는 손이 눈이었던 것이다. 정호는 재활원 친구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방학을 하면 집에 가도 되지만 4학년부터는 집에 가지 않았다. 자기 혼자 집에 가는 것이 미안했고, 남아 있는 친구들이 걱정되어서 함께 있고 싶었다. 운동회나 소풍 때 부모님들이 음식을 많이 싸 가지고 오는데 부모가 오지 않는 친구들은 그 집밥을 너무나도 그리워하기에 서로 같이 나눠 먹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솔선수범으로 정호는 5학년 때부터 전교 회장을 했다. 전교 회장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각 학년별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을 학교에 요청하는 일을 했다. 겨울이 되면 석유를 각 교실마다 넣어 주고 교실이 따뜻해지도록 미리 석유 불을 피워 놓아야 해서 일이 많았지만 정호는 친구들이 춥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불을 지폈다.

그는 특수학교 시절 추억이 많다. 친구들과 바닥에 앉아서 기어다니며 놀기도 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야구도 하고 축구도 했다. 그리고 피아노도 같이 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이렇게 같이 놀고 필요한 일들을 알아서 척척 해결해 주니까 정호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기숙사 사감과 생활재활교사들도 정호를 많이 예뻐해 주었다.

“제가 조금이라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친구들 표정도 어두워지기 때문에 항상 밝은 표정을 짓게 되었어요.”

이 말에서 정호가 얼마나 친구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알 수 있다.

서울로 상경


공연 모습. © 옥상훈 KIADA2017
성세재활학교는 중학교 과정밖에 없기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다.

성세 출신들은 보통 명혜학교로 진학을 하는데 정호는 삼육학교를 택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세중학교 1회 졸업생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혼자 서울로 상경하였다. 정호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고속버스로 서울로 향했다. 버스 계단을 팔로 짚고 올라가자 모든 시선이 정호에게 쏟아졌지만 정호는 당당했다. 서울로 유학을 가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는 환경이 자기에게 맞춰 주지 않는다면 자신이 환경에 맞춰서라도 이용을 했다. 그래서 그는 장애인에게 편의시설 제공이 안 되던 시절에는 기어서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육학교는 성세학교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자기와 비슷한 장애 유형을 가진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드디어 경쟁자들이 생긴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휠체어육상을 했지만 삼육에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운동하는 친구 들을 많이 사귀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국내 육상 경기는 휩쓸었고, 해외는 2006년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개최된 아시아 장애인경기대회 휠체어레이싱 종목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하고 2007년 대만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선수로서 두각을 보였다.

박정호는 육상, 마라톤, 농구 종목 선수 경력과 함께 장애인스포츠 코치와 감독으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예술 세계로 오다


공연 모습. © 옥상훈 KIADA2017
예술로 노선을 돌린 것은 2011년 휠체어무용의 전설 김용우를 만나고부터이다.

2005년 KBS에서 장애인의 히말라야 등반 도전기로 기획한 KBS희망원정대(산악인 엄홍길 대장)에 정호가 참여하게 되었다. 등반 과정을 촬영하던 사진작가 김우중이 박정호를 김용우에게 소개해 준 것이었다.

김용우는 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 생활을 하다가 휠체어무용을 하고 있었는데 함께 공연할 무용수를 찾고 있었다. 그가 박정우에게 같이해 보자고 제안해서 K휠댄스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박정호는 몸무게 42kg으로 남자로서는 작은 몸집이지만 몸이 아주 가볍다. 다리 대신 팔로 모든 생활을 해서 팔근육이 아주 탄탄하게 발달되어서 휠체어로 다양한 동작을 연기하고 있다.

다부진 상체에 삭발을 하여 강한 인상을 준다. 그가 삭발을 한 것은 아침마다 훈련하러 나가며 씻기도 바쁜데 머리에 신경 쓰는 게 싫어서 머리를 빡빡 깎아 버렸다. 배우 율브린너를 좋아해서 삭발 스타일을 계속하다 보니 이제 삭발이 박정호 캐릭터가 됐다.

2017년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에 한국 대표로 ‘아이덴티티’라는 작품을 갖고 솔로 무대를 가졌다. 그리고 K휠댄스프로젝트를 통해 ‘방황하는 몸’, ‘共&鳴’에 출연하였고, 2018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비엔나 현대무용 콩쿠르 파라(장애인) 부문에 K휠댄스프로젝트팀으로 참여 하는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휠체어육상 선수로 활동하던 모습.  © 박정호
도전을 즐기다

그는 선수 시절 순간에 승부를 내는 100m 스프린터였듯이 휠체어 앞바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간다든지 휠체어로 계단을 올라간다든지 또 남산의 가파른 경사로를 혼자서 휠체어로 오르기 등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성취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박정호는 워낙 독립적인 성격이라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자립적으로 생활했다. 서울로 와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었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선택과 결정을 혼자서 하고 혼자서 책임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혼자 대전시내에 나갔는데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에 가슴이 답답하고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요즘 말하는 공황장애 증상이 한동안 계속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캐나다 휠체어육상 선수가 세계 일주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와 함께 대전 3km 구간을 달리게 되었다.

“뭐랄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내 이름 박정호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지금도 그는 자신의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도전하고 있다. 체육과 무용 두 장르의 차이에 대해 박정 호는 이렇게 말했다.

“체육, 무용 둘 다 몸을 쓰는 거지만 춤은 온몸을 이용해서 나의 감동을 나만의 스타일로 표현하여 내면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선수 시절에는 목표를 정해 놓고 어느 한 기능을 발달시키기 위해 연속된 통제와 절제가 필요 하였어요. 반복적인 훈련은 저와의 싸움이라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했죠.”

I am That

 


박정호 대표.  © 박정호
부모님들은 여전히 대전에 살고 있는데 노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 박정호의 어린 시절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기 때문에 부모님과 형제들도 자기 못지 않게 많이 힘들었을 것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명절 때도 전화 통화만 한다. 고향 집에는 계단이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9일과 10일 이틀 동안 문화공간 오즈에서 박정호 이름을 걸고 첫 개인 창작무용 공연을 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운영하는 장애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사업에 처음으로 응모하였는데 선정이 되어 공연 비용이 마련되었기에 자신 있게 자신의 안무 데뷔 무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

공연 제목 ‘I am That’은 휠체어가 가진 상징성과 의미를 무생물의 도구가 아닌 존재성을 가진 대상으로 관점을 바꾸고,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서 휠체어라는 이름 이전의 고유한 존재성을 탐구한다.

나와 그것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맺음을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기존 사회의 경계와 틀을 부수고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무용 공연이다.

작품 준비를 위해 그는 김용우 대표와 자기 인생 이야기를 하며 그 서사를 토대로 공연을 기획하였으며, 김문희(연출), 송효영(무용수), 이동우(무용수)의 전문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박정호는 캥스터즈에서 근무하고 있다. 휠체어 피트니스 솔루션으로 휠리엑스(Wheely-X)를 개발한 업체이다.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유산소 및 어깨, 팔 등 상체의 밸런스를 위한 운동기구인 휠체어 런닝머신이다.

그는 회사 설립 초창기부터 함께하면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삶이 편안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박정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사 K휠댄스프로젝트 객원 단원 장애인 인식개선 특별 강사

2024 박정호 창작무용 발표 ‘I am That’(기획/안무/출연)

2024 열린음악회(K-wheel dance project팀)

2023 K휠댄스프로젝트 ‘共&鳴’ 출연

2022 K휠댄스프로젝트 ‘방황하는 몸’ 출연

2018 오스트리아 비엔나 현대무용 콩쿠르 파라 부문 K휠댄스프로젝트 참여

2017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한국대표 ‘Identity’ 솔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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