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돌며 ‘사랑의 호떡’ 전하는 김영욱·김용자 부부
호떡봉사 10년, “남는 게 없는 장사, 마음만은 넉넉”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1-01-12 11:32:25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 ‘호호 불어먹는’ 호떡이 자꾸 생각난다. 절절 끓는 기름 위에서 맛좋게 익은 호떡을 종이로 집어 냉큼 한입 베어 물면 검은 설탕물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누구나 그 뜨거운 설탕물에 혀를 크게 데인 추억이 있을 듯하다. 그래도 우리는 겨울만 되면 호떡을 찾아 추위를 달래고 허기를 채운다. ‘호떡집에 불난 듯하다’는 속담이 있듯 그렇게 겨울이 오면 호떡집에는 호떡을 사러 온 손님들로 가득하다. 겨울철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그렇지만 ‘대목’인 겨울철, 뜨끈한 호떡을 전달하기 위해 첩첩산중을 찾아 헤매는 호떡집이 있다. 인천의 명물 김영욱(남, 63)·김용자(여, 61) 부부가 운영하는 ‘사랑의 호떡집’. 십여년 째 밀가루 반죽에 ‘사랑’을 듬뿍 담아 장애인, 노인, 아이들을 위해 호떡을 뒤집는 이들 부부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감돈다. 호떡보다 따뜻하고 달콤한 이들 부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봤다.
그렇지만 ‘대목’인 겨울철, 뜨끈한 호떡을 전달하기 위해 첩첩산중을 찾아 헤매는 호떡집이 있다. 인천의 명물 김영욱(남, 63)·김용자(여, 61) 부부가 운영하는 ‘사랑의 호떡집’. 십여년 째 밀가루 반죽에 ‘사랑’을 듬뿍 담아 장애인, 노인, 아이들을 위해 호떡을 뒤집는 이들 부부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감돈다. 호떡보다 따뜻하고 달콤한 이들 부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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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시 인천 부평구 부개동에 위치한 <오징어호떡집>. 5평 남짓한 가게 안이 호떡 굽는 냄새로 꽉 찼다. 호떡 판 위에는 수십 개의 노릇노릇한 호떡이 한가득. 30년간 호떡장사를 해온 김씨에게는 익숙한 일상이다.
밀가루 반죽을 떼 설탕을 넣어 판에 올려놓고 뒤집기를 여러 번. 김씨는 익은 호떡을 판의 오른쪽으로 삭삭 밀어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아내가 비닐봉지에 호떡 다섯 개씩을 담아 종이 박스 안에 차곡차곡 쌓아 넣는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 빨리 빨리 구우쇼.” 부천 아동보호시설인 ‘새소망의 집’ 식구들이 호떡을 가지러 오기로 한 시간이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아내의 재촉에 김씨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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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문화회관, 11일 연꽃, 12일 무지개, 13일 애향원, 14일 임마누엘….’ 벽면에 떡하니 붙어있는 화이트보드에는 ‘2011년 1월 봉사일정’이 빽빽하게 정리돼 있다. “하도 많아서 적어두지 않으면 큰일 나.” 혹시라도 일정에 착오가 있을까 싶어 김씨는 꼼꼼하게 체크한다.
호떡장수 30년, 호떡봉사 10년
‘호떡 굽는 재주’로 봉사를 시작한지도 벌써 십여 년. 강릉에 있던 시절, 남는 호떡을 모아 근처 바람 쐬러 나오신 노인들 잡수라고 갖다드린 게 발단이 됐다. 날이 따뜻해지면 남는 호떡은 더 많아졌고, 이를 모아 가까운 장애인시설이나 복지원에도 호떡을 나르기 시작했다. ‘남는 호떡 갖다 주는 게 무슨 대수냐’며 5년 가까이 호떡을 바친 이들 부부에게 생각지도 못한 ‘상’이 떨어졌다. 강릉시사회복지협의회가 주는 '표창장'을 받게 된 것.
“상 받을 짓 한 게 없다며 안 갔지. 근데 사람들이 우리 부인을 납치해서 억지로 상을 쥐어줬더라고.”
이후 호떡을 통해 ‘제대로’ 베풀어 보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극심한 장마로 가게가 물에 잠기고, 이사만 11번 다니는 등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 맘 놓고 봉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2008년, 1년간 청주에 내려가 모은 5천만원을 갖고 강릉 주문진에 ‘오징어호떡’ 간판을 내걸었다. 큰맘 먹고 대출받아 트럭을 장만했고, 트럭 뒤에 언제 어디서든 호떡을 구울 수 있도록 공간도 마련했다.
“돈 있을 때 미리미리 사놔야한다”며 2012년까지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트럭 두 대 분량의 설탕도 샀다. 그렇게 주중에는 전국의 장애인시설, 요양원, 복지관, 보육원 등을 돌며 사람들에게 호떡을 나누고 주말 이틀만 반짝 장사를 하는, 본격적인 호떡봉사 인생이 펼쳐졌다. 남는 게 없는 장사, 그래도 마음만은 넉넉했다.
트럭타고 첩첩산중 돌며 ‘사랑의 호떡’ 전해
김씨 부부는 ‘사랑의 호떡’이란 문구가 적혀있는 흰색 트럭을 타고, 가까운 보육원에서 첩첩산중에 위치한 요양원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호떡 봉사 일정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가까운 지역 내 시설 등은 한 달에 한번 꾸준히 찾아가고, 거리가 먼 지역은 4~5일간의 코스를 정해 ‘작정’하고 봉사를 떠나는 것. ‘음성-상주-천봉산-예천-문경’과 ‘춘천-양양-동해-인제’ 등의 코스는 이런 규칙 하에 만들어졌다.
긴 시간 봉사할 땐 숙식 마련도 부부의 몫이다.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반죽을 만들고 9시부터 밤 11시까지 종일 이곳저곳을 돈 뒤 여관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도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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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호떡 먹고 나라 잘 지키겠다는 군인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 일을 멈추겠어.” 주말에 열리는 장애인 체육대회나 기타 행사에서 부부를 찾는 일들도 많아져 일주일 내내 장사도 못하고 봉사만 하는 일이 숱하다. 몸은 고되도 호떡만 맛있게 먹어주는 곳이 있다면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사랑은 베푸는 거야, 행복은 여유인거고
부부는 “교통이 편리하고 좀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곳으로 가자”며 지난해 3월 적금통장을 깨고 금붙이를 팔아 지금의 인천으로 이사했다. 부부 둘이 누우면 딱 떨어지는 작은 방 하나에 샤워시설조차 없는 초라한 가게. 보증금 천만원에 월세 50만원의 비싼 임대료를 내야 하는데, 하루 평균 매출은 5만원이 전부. 결국 적자다. “능력되면 더하고 능력 안 되면 덜하면 되지.” 베푸는 일에 돈이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다.
날이 춥고 눈도 많이 내려 트럭타고 다니기가 쉽지 않은 요즘. ‘내 호떡을 기다릴까’ 싶은 마음에 김씨는 매일 호떡을 구워 전국으로 택배를 부친다. “내가 가면 아이들이 막 뛰어나와서 안겨. 특히 장애 아이들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몰라. 정말 천사들이야, 천사.” 아이들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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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는 지적장애 아이가 괴발개발 남긴 감사의 글,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보내온 편지, 82살 할머니가 난생 처음 호떡 맛을 봐 고맙다는 내용 등이 수두룩하다.
글뿐만이 아니다. 좋은 일 한다며 밀가루나 쌀 같은 걸 갖다 주는 사람도 많다. 가끔 장사꾼으로 오해받아 쫓겨나고 신고 당해도 이런 사람들의 정이 있기에 부부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올해 4, 5월에도 봉사 예약이 빼곡히 잡혀 있다. 연평도나 개성, 해외에도 함께 가자는 제의가 들어온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김씨 부부.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언제 어디든 찾아갈 준비가 돼 있다.
“사랑은 베푸는 거야. 행복은 여유인거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호떡을 굽는 거지!” 김씨 부부는 오늘도 뜨거운 호떡 판 앞에 서서 사랑을 담아 호떡을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