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3.01.08 14:45

우리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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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발간한 '내 안의 역사 쓰기'

내가 아이였을 때, 바로 그 가난 때문에 병원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장애인이 되었다. 그리고 가난은 이어졌다. 나는 다시 나를 엄습한 가난 때문에 딸아이와 피눈물 나는 이별을 해야 했다. 나는 장애보다도 돈이 더 무서운 시절을 살아왔다. 돈이 없어 그리된 시절, 태어나면서부터 돈은 인생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장애보다도 더 큰 슬픔은 ‘돈’이었다. - 장희영(시설 거주 15년, 뇌병변장애 1급)

수십 년간 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생활 중이거나 탈시설을 준비 중인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지난해 4개월간 탈시설장애인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진행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지난 12월 20일 이들의 삶을 담은 책 ‘내 안의 역사 쓰기’를 발간했다.

이 책은 스토리텔링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덟 명의 중증장애인 이야기를 임상역사가 이영남 씨가 글로 옮기고 고은경 씨가 사진을 찍어 만들었다.

스토리텔링 프로젝트에 참여한 장애인들은 첫 순서로 각자의 매력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령 전기영 씨는 ‘남자들이 빠져드는 눈’, 김남옥 씨는 ‘말을 안하려다가도 끝내 다 하는 것’, 정승배 씨는 ‘깡패 두목 같이 생긴 외모'가 매력이다.

이 이야기들은 참여자들이 ‘탈시설장애인’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였지만, 각자가 개성이 있는 존재임을 독자들에게 새삼 환기시킨다. 아울러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간의 시설 생활을 사실상 강요한 이 사회에 이들도 개별성을 가진 자유로운 인간임을 넌지시 항변한다. 그래서일까? 각자의 매력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이 장의 부제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힘’이다.

이어 참여자들은 다음 장에서 각자의 심장에 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 대신 나를 키운 고모, 서로 의지하며 시설생활을 함께한 언니, 자원봉사자로 왔던 첫 사랑 누나, 시설에서 만나 아들로 삼았던 아이 등…. 이 이야기들은 참여자들이 개별성을 가진 자유로운 인간일 뿐만 아니라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타자와의 관계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뜨리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갈래의 이야기는 결국 탈시설장애인들이 당신들과 똑같이 우리도 개별성을 가진 자유로운 인간임을,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타자와의 관계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는 외침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열린 출판기념회 모습.

이어 다음 장인 '다시 쓰는 시설의 역사'에서 여덟 명의 참여자들은 시설생활을 중심으로 저마다의 고민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물론 각자의 삶의 방향과 무게가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아까의 외침은 더욱 또렷해진다. 8명 모두가 고유한 역사를 지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우리 앞에 성큼성큼 다가온다.

장애로 태어난 지금 인생이 참 싫다. 지긋지긋하다. 내 인생이 저주스럽기만 하다.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난 여전히 장애인이다. - 정승배(시설거주 25년, 뇌병변장애 1급)

내 투쟁방식은 ‘매일매일 밖으로의 외출’이다. 시설에 있을 때도 나는 매일 밖으로 나왔다. 체험홈에 있으면서도 매일 밖으로 나온다. 사람들은 내가 의지가 있고 의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참 고마운 말이다. 그런데 더 큰 힘은 호기심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뭘 하지?’ 기대가 된다. 집회 이전에, 투쟁 이전에 내게는 호기심이 있다. - 황인현(시설거주 22년, 뇌병변장애 1급)

시설에 갇혀 수십 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여전히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장애가 더 심한 사람을 보면서 좌절만 해온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이도 있다. 장애인인권활동가를 꿈꾸는 사람도 있고 화가가 되고 싶은 이도 있다. 활동보조인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사람도 있고 자잘한 일상의 행복을 갈구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내 안의 역사 쓰기’는 탈시설장애인의 스토리텔링이라는 방식을 통해 장애인의 희로애락이 담긴 다양하고 개별적인 삶을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탈시설-자립생활의 문제를 장애와 시설생활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가려지는 개인의 정체성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복원하려는 작업의 성과물이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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