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3.01.11 11:05

드디어 버스를 타고 등하교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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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덕분에 한국에서 일어나는 장애인계 이슈들에 대해 신속하고 생생하게 (현장에 있는 것보다는 당연히 못 하지만…) 접할 수 있어 너무나 좋고 감사하다. 자꾸만 안주하게 되는 일상에 강한 자극제가 된다. 상황은 다를지라도, 장애해방(!)을 방해하는 어떠한 공통적인 지점을 찾아보는 일은 재미있다.

살고 있는 기숙사와 수업을 듣는 캠퍼스가 달라 매일 셔틀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한다. 한국에서 대학교 시절 이용했던 ‘휠체어 수송 차량’이 아니라, 반가운 얼굴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만원일 때면 본의 아니게 신체 접촉을 경험하기도 하는 버스이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이지만, 당시에 분리를 강요하는 휠체어 수송 차량이 아닌 ‘저상 셔틀버스’를 간절히 원하고 다른 학생들과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터라, 처음에는 소원을 성취한 듯이 기뻤다. 하지만 곧 매일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것이 마냥 신 나는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원할 때 언제든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게 한다. 기숙사 앞을 지나가는 버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젊은 연령층이어서일까, 바쁜 도시의 분위기 탓일까. 경사로를 내리고 승하차를 할 때 쏠리는 시선은 감당을 넘어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하게 외면해야 하고, 셔틀버스 내 휠체어석의 존재를 모르는 듯이 꿋꿋이 앉아 있는 학생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떠밀려 좌석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의 무표정이 내 탓인 것만 같다.

하지만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나 역시 그들의 입장에 너무나 쉽게 서버리고, 종종 나의 상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기사 아저씨가 조금만 더디게 안전장치를 착용시킬 때면, 나 때문에 오랫동안 정차해 있다는 사실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서, "제 휠체어는 브레이크가 있어 움직이지 않으니 안전장치를 하지 않으셔도 돼요." 라는 거짓말을 시도한다.

한 번은 안전장치가 느슨해서 급커브에 휠체어가 미끄러져 옆의 의자를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퓨즈가 나가서 휠체어가 작동을 멈추는 대형사고(!)를 겪었음에도 말이다. 결국은 강력하게 법을 준수하는 기사님들에 의해 나의 ‘선의의 요청’은 항상 묵살되고 말지만.

이 사회의 속도를 쉽사리 거부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과 나 자신의 단면인 것 같아 슬펐다. 슬픈 감정은 쉽사리 가시지 않겠지만, 매일같이 버스를 타는 일은 ‘그들’이 설정해 놓은 속도를 멈추는 일이라는 거창한 자부심으로 임하기로 했다.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던 미국 사람들의 높은 ‘시민 의식’에 너무 기댄 탓일까. 내가 성격이 유별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까칠한 장애인도 있다면 ‘이것 먹고 떨어져라’는 식의 복지를 지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리적인 통합은 물론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대중 속에 진정으로 통합됨을 느끼는 것이 장애해방의 궁극적인 목적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아님은 현재 보스턴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현아의 기분 좋은 편지 한 통

장애인이며, 여성이며, 아시안으로, 다양한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졌고 그렇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대학 장애인권동아리 시절 장애인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글로써 꾸준히 소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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