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3.10.10 10:00

얼어붙은 시대의 냉동고를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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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18:4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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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경동 시인이 ‘시대와 시’라는 주제로 8일 저녁 7시 30분 광화문 해치마당에 섰다. 이 자리엔 이날 낮 2시 교육부를 상대로 장애인평생교육권과 농교육 현실개선을 촉구하며 집회를 마치고 온 이들이 함께했다.


남자는 보성 벌교 시장바닥에서 태어났다. 5일 장터가 섰던 그곳이 그의 고향이다. 남자는 어려서부터 때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집에 있을 때면 또박또박 책 읽는 연습을 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소리 내 읽었다. 누군가 만났을 때의 상황을 상상하며 거울 앞에서 연습해보기도 했다.

 

중2 때 그는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봄비’를 주제로 썼던 시가 국어 선생님께 칭찬받은 것이 힘이 됐다. 그로부터 받은 ‘최소한의 존중’에 대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그는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따로 별스럽게 문학 공부를 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말을 더듬던 어린 시절의 상황이 자연히 그를 문학으로 인도했다. “내 짧은 혀와 말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기에.


지금도 혼자 있을 때면
너와 함께 아름다운 말들을 연습하고 있는
나를 본다. ‘사랑’이라고 내가 발음할 때
그 사랑은 아무나 헤프게 얘기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고
내가 ‘평화’라고 발음할 때
그 평화는 그냥 쉽게 얻어지는 평화가 아니라고
너에게 약속하며 그렇게 너와 함께 읽었던
수많은 문장들이 모여 시인이 되기도 한 나
지금도 여전히 짧고 더듬거리지만
불의에 맞서서는 한 치 물러섬 없는 내 짧은 혀
너가 이젠 자랑스럽다
                                 - 송경동, 「말더듬이의 노래」 중


송경동 시인이 ‘시대와 시’라는 주제로 8일 저녁 7시 30분 광화문 해치마당에 섰다. 이 자리에는 장애인평생교육권과 농교육 현실개선을 촉구하며 1박 2일 노숙투쟁을 벌이는 이들이 모였다.
  
“시인․소설가가 되는 건 급하지 않다.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해방  전후 시기 빨치산 활동을 했던 유진오 시인의 말을 빌려 이날 강의의 문을 열었다.

 

송 시인은 “희망버스가 커질 당시 중앙일보에서 ‘송경동은 시인의 탈을 쓴 전문 시위꾼’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정체성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라며 “최소한의 민주주의자가 되는 훈련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희망버스 건으로 수배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송 시인은 오전에 신동엽 창작상을 받고 같은 날 오후 체포 영장을 발부받았다.

 

“오전에 문학상을 받는다는 보도를 봤을 땐 내가 가식적으로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에 체포 영장 발부 소식을 들었을 땐 내가 조금은 인간답게 사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이제야 자본과 정권의 치부를 향해 나의 말과 글이, 행동이 조금 다가가고 있구나 싶어 나를 위로했다. 난 상장보다 영장 받는 게 더 자랑스럽고 기쁜 시인이다.”

 

송 시인은 백기완 선생의 언어를 빌려 민중의 시에 관해 이야기했다. 민중에게는 비나리가 있었고, 말림이 있었으며, 쇳소리가 있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대중적이지 않던 시절에도 민중의 시는 존재했다. 시골 농부들은 농사짓다가도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읊조렸다. 글을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에게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 그것이 비나리(간절히 비는 행위)였고 이것이 민중들의 문학 양식이었다.

 

비나리는 몸으로도 나타났다. 입으로만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눈도, 표정도 말을 한다. 그것이 말림이라는 형식이다. 말림이 있었다면 쇳소리도 있었다. 득음한 소리꾼은 소리의 형식을 배운 것이지 내용을 배운 게 아니었다. 따라서 진정한 소리는 쇳소리였다.

 

송 시인은 “‘에이, 씨팔, 뒤집어 버리든지 해야지, 더러운 세상!’ 이것이 민중들의 쇳소리였다. 이게 득음보다 위대하고 더 아름다운 소리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백기완 선생의 제안으로 11월 29일에 있을 '시낭송의 밤'을 준비하고 있다. 송 시인은 “백기완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박근혜 시대에 모든 인간의 존엄이 자본주의에 어떻게 짓밟혀가고 있는가를 문학으로 소리 내보고 싶다 하여 준비하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송 시인은 “비나리, 말림, 쇳소리를 통해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배운다면 오늘 이 자리에선 쇳소리보다 더 큰 소리일 수 있는 새로운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라며 “수화는 이 사회에 다른 하나의 언어를 더 보태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어를 통해 다른 민족의 문화를 얻게 되듯 수화라는 언어로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송 시인은 “그래서 이것은 중요한 투쟁이며 모두에게 새로운 삶, 새로운 언어, 새로운 존중의 방식을 가르쳐 주는 투쟁이다. 지금은 비록 외로우나 그 투쟁을 앞장서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라며 “우리의 투쟁 요구가 관철되는 순간 우리 사회 인권의 깊이는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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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의 강의를 수화통역사가 수화로 통역하고 있다. 수화통역을 보고 있는 농아인들.

 

송 시인은 용산참사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용산참사는 여전히 진실규명이 안 되고 있다. ‘이웃이 이웃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징역을 살았고 한 명은 여전히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라며 “그러나 광주 5·18의 진실이 끝끝내 밝혀지듯 용산참사도 조만간 진상 규명될 것이라 믿는다”라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어 용산참사가 났던 그해 6월에 썼던 시를 낭독했다. 사회적 관심도 옅어지고 동력도 떨어질 때였다. 함께 싸우던 이들과 ‘잊지 말자, 기운 내자’라는 뜻으로 썼던 시였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의 용기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의 권리가 묶여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소망인
평등과 평화와 사랑의 염원이 주리 틀려 있다

 

(중략)

 

제발 이 냉동고를 열자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이 시대를
열어라. 이 냉동고를
              - 송경동, 「이 냉동고를 열어라」 중


송 시인은 “장애인의 교육권, 밀양에서 요구하는 자치와 평화, 강정에서 요구하는 평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요구하는 평등과 최소한의 생존권 등 모든 것들이 아직도 시대의 냉동고에 갇혀 있다”라며 “민주주의의 모든 현장에서, 얼어붙은 시대의 냉동고를 열어 조금은 더 따뜻한 세계를 만들어 보려고 이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자연히 이야기는 희망버스 이야기로 이어졌다. 1차 희망버스 때 16대였던 것이 2차 희망버스 때는 전국에서 194대의 버스가 출발했다. 그중에는 장애인들이 탄 버스가 있었고 철거민 버스, 농민 버스, 성소수자 무지개 버스, 청소년 버스 등도 있었다. 또한 마석 가구공단 이주노동자들이 봉고를 타고 오기도 했다. 기적이었고 희망이었다. 앞으로 더더욱 많아야 할 ‘희망들’이었다.

 

송 시인은 “노동자들은 장애인들의 투쟁에 적극 연대하지 못하는데, 오히려 장애인들은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장애해방의 날과도 같다며 부산까지 달려와 주었다”라면서 “모든 인권과 투쟁이 조금씩 밀리고 있는 시대다. 그러나 늘 밀릴 거로 생각지 않으며 또다시 계기가 오리라 생각한다. 그땐 ‘죽 쒀서 개 주지 말고’ 우리가 민중 권력, 민주주의의 권력이 되어 만들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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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성인 교육권 쟁취” “장애성인도 교육받고 싶다!”

 

송 시인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네루다는 공산당원으로 당시 대선에 나갔으나 사회당원 살바도르 아옌데와 단일화해 인민전선을 형성한 바 있다.

 

한편, 아옌데는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2년 만에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무너진다.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끝까지 저항하며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남기고 그곳에서 자신과 생사를 같이했던 몇몇 이들과 저항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송 시인은 “이것은 우리 모두의 역사다. 우리는 인종과 국경을 넘어 인간으로서 연대해야 한다.”라며 “우리가 이러한 역사 위에 서 있음을 안다면 한국사회의 자잘한 변화, 정치적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역사의 큰 흐름을 밀고 나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송 시인은 현장에서 “왜 그리 비타협적이냐”라는 질타를 받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 이유를 그는 “그것은 나의 해방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태생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목수, 배관, 용접 등으로 삶을 이어왔다. 문학 공부한다고 처음 서울에 올라와 묵은 곳은 지하철 공사현장의 컨테이너 간이 숙소였다.

 

여의나루역에서 마포까지 한강 밑을 뚫고 지나가는 지하철 공사현장도 그의 밥벌이 장소였다. 그곳에서 그는 용접일을 했다. “한강 뚫으면서 여러 명이 죽어나갔다”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미 예산은 지하철 100미터 뚫을 때마다 한 사람 죽을 것을 계산해 책정되어 있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100미터가 지날 때면, ‘또 한 사람이 죽어나갔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나의 해방을 위한 길에 모두의 해방이 맞닿아있다면 행복한 거다. 또한 그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난 나의 해방을 위해 투쟁한다. 나의 해방이 걸려 있기에 비타협적이다. 누가 나를 대신해서 나의 해방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십수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 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 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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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낭독하고 있는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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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평생교육권과 농교육 현실개선을 촉구하는 이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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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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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마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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