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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해방운동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찾다-2013년 장애해방학교’ 마지막 시간이 26일 늦은 2시 노들장애인야학 배움터에서 열렸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삶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 낸 투쟁이 지금까지 어떤 역사를 만들고 어떻게 삶을 변화시켜왔는가? ‘장애해방운동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찾다-2013년 장애해방학교’ 마지막 시간이 26일 늦은 2시 노들장애인야학 배움터에서 열렸다.

 

이날 마지막 강의는 ‘진보 장애인운동의 역사’를 주제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강연에 나섰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장애인운동의 역사를 설명하며 그 의미와 성과를 밝혔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들이 현재 복지제도로 누리고 있는 권리를 열거하며 현장에서 투쟁한 장애인이 있었기에 이러한 권리가 보장된 것이라 밝혔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2001년부터 10년간 장애인운동의 역사와 그전의 역사 속에서 장애인들이 열심히 투쟁했는데, 그 결과 활동보조서비스, 저상버스·장애인콜택시·각종 편의시설, 특수교육법, 장애인연금,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이 만들어졌다”라면서 “내년도 복지부 예산 1조 2000억 중 장애인 관련 예산이 7000억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양을 차지하는데, 만약 우리가 2001년도부터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제도는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들이 지금껏 권리를 쟁취해왔음에도 여전히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면서, 투쟁의 근거를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벌여온 투쟁의 역사를 통해 찾고자 했다.

 

“누군가는 ‘이 정도 만들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장애인의 삶을 –100이라 할 때, 투쟁을 통해 20을 올렸어도 아직도 –80이라는 거죠. 이제 -80을 최소한 0으로 올려야 하는데 그 방법을 어떻게 할까요?

 

장애인이 처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만 있지 않습니다.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러 사람의 방식이 틀리지 않고 제각기 소중합니다. 하지만 지금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투쟁하고 있는 몇 명 안 되는 사람들, 함께 투쟁하자고 모아봤자 천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이뤄온 투쟁의 역사와 방법이 중요한데요. 이 역사를 통해 다양한 운동 중 핵심적인 게 무엇이고, 그것이 여러분께서 하는 활동에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보려 합니다.”

 

이어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운동 역사를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가 직접 현장에서 부딪힌 민중운동사라 표현하며, 현장에서 조직하고 투쟁해온 사람들이 벌여온 운동을 사진과 함께 열거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운동의 시작 지점으로 자결로서 서울시 이동권 문제를 제기한 김순석 열사의 사례를 꼽았다.

 

1984년 9월, 지체장애인 김순석 씨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동하게 할 수 없는 사회에 좌절해 당시 서울시장에게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라는 5장의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그는 서울시장에게 거리 턱을 없애달라고 하면서 자살했다”라면서 “전태일 열사는 노동자 권리를 위해 투쟁하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죽었는데, 김순석 열사는 장애인운동에서 전태일과 같다. 스스로 목숨을 걸고 장애인이 겪는 문제를 제기하고 죽어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상임공동대표는 1988년부터 3년 동안 전개된 장애인고용촉진법과 장애인복지법 제정 투쟁이 한계는 있지만, 1981년 만들어진 심신장애자복지법의 허점을 개선하고 장애인의 노동권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두환 정권이 80년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해 권력을 찬탈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만든 게 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에요. 근데 이 법이 ‘무엇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내용만 있지, 강제하는 법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돈 있으면 복지 해주고 없으면 마는 건데, 자기들 뱃속에 채우고 우리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조금이라도 강제하기 위해 장애인복지법으로 만들자는 투쟁을 88년도에 해서 90년도에 법으로 만들어진 거죠.

 

장애인고용촉진법은 장애인 노동권을 고민했어요. 장애인고용촉진법은 300명 이상 사업체에서 어느 정도 의무고용을 하라는 건데 실제로 의무고용으로 취업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내가 기업가라도 장애인 고용하지 않아요. 차라리 부담금 내고 말지. 물론 이 당시 시대적 한계가 있어요. 하도 고용이 안 되니 의무고용으로라도 장애인을 일하게 하자는 게 당시 시대 문제의식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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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정립회관 점거 농성에 참가한 바 있는 정태수 열사와 함께했던 일화를 소개하는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이어 박 상임공동대표는 1990년과 1993년, 두 차례에 걸친 정립회관 점거 농성을 통해 장애인운동이 마음씨 좋은 사람의 시혜를 거부하고 당사자들의 투쟁으로 장애인 차별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을 밝혔다.

 

“90년에 정립회관 이사진이 예산을 삥땅 친 걸 안 사람들이 정립회관을 점거했어요. 93년도에 비슷한 문제로 또 정립회관을 점거했고요. 이 두 차례 점거농성을 통해 정립회관이 완전히 바뀝니다. 당시 점거한 사람들이 ‘장애인복지 갉아먹는 황연대 구속하라’라고 요구했는데 정작 황연대 이 사람은 억울해하더라고요. 사실 이 사람이 장애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는 했어요. 의대 떨어진 소아마비 장애인이 너무 억울해서 이 사람을 찾아갔는데, 이 분이 육영수 여사한테 말해서 인문대까진 붙여줬거든요. 하지만 현장에서 투쟁을 고민하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장애인이 차별받는 문제를 어떻게 투쟁으로 바꿔볼까 생각했던 것이죠.”

 

이어 박 상임공동대표는 1995년 최정환 열사 분신과 이덕인 열사 의문사 이후 일어난 투쟁은 구걸이나 노점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장애인들이 본격적으로 생존권 사수를 위해 투쟁에 나섰다고 밝혔다.

 

노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최정환 열사는 1995년 3월 서초구청이 좌판을 빼앗아 가자 구청에 배터리를 찾으러 갔다가 심한 모멸감에 분신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고인은 “4백만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내 한 몸 죽어도 좋다. 복수해 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인천 아암도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이덕인 열사는 1995년 11월 인천시와 연수구에서 용역 1,500여 명을 투입해 노점을 철거하자 무자비한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함께 싸우던 장애인, 노점상인들과 함께 망루 위에 올랐다. 이후 열사는 투쟁 상황을 알리기 위해 망루에서 내려왔다가 실종된 뒤 3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1995년 당시 최정환, 이덕인 두 열사의 죽음 이후 장애인, 노점상, 시민사회단체, 학생들이 열사의 뜻을 계승해 당시 김영삼 정권을 상대로 생존권 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당시 많은 장애인이 먹고살기 위해 구걸하고 앵벌이를 했어요.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노점 좌판을 했는데, 구청에서 탄압이 있고 좌판을 뺏어가니까 분노한 최정환 열사가 분신자살했어요. 이때가 김영삼 문민정부인데, 2000명의 노점상, 장애인, 사회단체, 학생들이 문민정부 들어 처음으로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했어요. 이 운동은 생존권 투쟁이었고, 당시 투쟁하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저항하는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아암도에서는 이덕인 열사가 단속에 항의해 망루 농성을 벌이다 변사체로 발견되었어요.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의문사했어요. 발견 당시 양 팔이 포박되어 있었는데 자살이라니 말도 안 되는 거였죠. 이후 장례를 치르기 전 경찰이 시신을 달라고 해서 못 준다 했는데, 영안실 벽을 뚫고 시신을 탈취해서 흉측하게 만들고 돌려주더라고요. 결국, 열사의 사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말았죠.”

 

이어 박 상임공동대표는 1996년 장애인운동의 중요한 의제인 시설 문제를 제기한 에바다학교 정상화 투쟁을 소개했다.

 

에바다학교 정상화 투쟁은 1996년 당시 에바다학교에서 일어난 농아 학생에 대한 구타, 강제노동 등 비인간적 만행과 에바다재단의 비리 행각에 항거해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가 결성되어 7년 동안 에바다재단의 퇴진을 요구한 투쟁이다. 그 결과 2003년 비리를 저지른 구 에바다재단이 물러나고 에바다학교의 운영이 정상화된 바 있다.

 

“당시 에바다재단에서 장애인 밥값, 난방비, 옷값 떼먹고 후원금, 사회복지사 인건비 떼먹어서 수백억 원을 챙깁니다. 그렇게 떼먹은 수백억 원으로 복지 법인을 굴리는데, 그 돈으로 지방 토착 세력과 결탁하다 보니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죠. 김대중 정부 때도 에바다 문제 해결하겠다고 약속해놓고 해결하지 않아서 정부 규탄 투쟁을 하기도 했어요. 이 문제는 7년간 끈질기게 투쟁해서 노무현 정부 때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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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 중 장애인들이 버스를 점거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이어 박 상임공동대표는 1997년 현장 장애인운동 단체인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가 한국DPI와 통합되면서 2001년까지 단절기를 겪은 현장 장애인운동이 2001년 오이도 리프트 참사 이후 장애인이동권연대가 결성되어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이어져 온 과정을 소개했다.

 

“장애인운동이 단절의 역사를 딛고 일어선 게 2001년 이동권 투쟁인데, 오이도역 리프트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은 뒤 지하철을 점거하고 리프트를 점거했어요. 그리고 서울역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는데 공권력에 박살 났어요. 우리는 또다시 버스를 점거했고, 8월 29일 93명이 연행됩니다. 이때 처음으로 우리 투쟁이 방송 3사 9시 뉴스에 나오고, 장애인들이 이동권이라는 문제가 있고 버스가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국민이 알기 시작한 거죠.

 

우리가 저상버스 도입하라고 하면 서울시는 항상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왜 불가능한가 해서 저상버스를 빌려 정말 버스가 돌아다니기 불가능한가 해서 운전해봤는데 하나도 불가능하지 않아요. 그건 다시 말하자면 장애인들을 위해 저상버스를 투입하기 아깝다는 뜻이었겠죠. 이후 이순신동상에도 올라가고, 2002년 발산역에서 리프트 추락한 사고로 또 지하철 점거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39일 단식 농성해서 당시 이명박 시장에게 모든 역사에 장애인 엘리베이터 설치하고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이어 박 상임공동대표는 2002년부터 전개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공동투쟁단 활동을 소개하며, 국가가 지정한 장애인의 날의 허구성에 맞서 저항하는 장애인의 모습을 알렸다.

 

“2002년부터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만들어가는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비 안 오는 날을 골라서 장애인들 놀게 해주겠다고 만든 날이 장애인의 날입니다. 사실 1년 365일 차별철폐 해야 하는데, 달랑 하루 놀게 해주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그래서 4월 20일마다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을 하기 시작했고, 인권위 점거도 하고 마포대교를 점거하기도 하고 강변북로를 점거하기도 했어요. 이날은 장애인들이 저항하는 날이라고 명확히 사회적으로 알리는 투쟁을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김순석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30여 년 동안 이어진 장애인운동의 의미를 돌아본 박 상임공동대표는 앞으로 장애인운동이 현장에서 행동하고 투쟁하며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물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해 참가자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바람을 밝히며 강연을 마쳤다.

 

“84년부터 30여 년 동안 장애인운동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역 현장에서 투쟁에 나설 동지들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도 하고 열심히 투쟁하는 조직에서 활동가의 역할을 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금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투쟁을 하고 있는데, 장애해방학교 수료생 여러분과 투쟁하고 승리를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이날 수료식에서 20여 명의 활동가는 8회 장애해방학교에 참가한 소감을 밝혔다.

 

오산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순기 활동가는 “장애해방학교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라면서 “앞으로 많은 집회에 참여해야겠다. 많은 활동가 여러분과 만나서 반가웠다.”라고 밝혔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김선아 사무국장은 “장애해방학교 강의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예 모르던 분야여서 박경석 교장 선생님이 해주셨던 운동사가 유익했고, 장애학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라면서 “이런 학교가 열린다는 것이 고맙다”라고 전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올해 장애해방학교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한 장순기 활동가, 광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광현 활동가를 비롯해 총 11명의 참가자에게 장애해방학교 수료증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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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을 밝히는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김선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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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증을 받는 장순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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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윤정훈 활동가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수료증 수여 전에 악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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