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장윤경 칼럼니스트】“예준 엄마, 인사해요, 이쪽은 우리 학교 내년 장애 신입생 4명 엄마! 오늘같이 이 자리에 모임 좋겠다 싶어, 제가 연락 드렸어요.”

아침부터 카페에 도움반 예비 신입생 엄마들까지 모인 자리, 도움반 엄마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며 착석했다.

“내년에는 우리 학교 도움반 학생 수가 많아서 2학년부터 공익요원이랑 실무사 지원이 지금보다 줄고, 무조건 저학년에 우선순위 배정이라고 하던데 예준이 엄마 알고 있죠?”

“그래서 말인데요, 아이들이 내년이라 해도 아직은 초등 2학년이라 도움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이참에 우리 부모들이 교장 선생님께 활동보조 선생님 출입허락을 요청해 보는 거 어떨까요? 각자 활동보조 선생님은 구하고요. 이분들이야 보건증과 신분 검증은 된 분들이니 개인부담금이야 발생하겠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 문제 해결될 듯한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이미 다른 학교들은 이렇게 운영되는 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내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다들 괜찮은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예비 신입생 엄마들은 선배 맘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누군가는 물음표를 던졌다. “아니, 학교장 선생님이 외부인력 출입으로 혹시라도 문제 될 일이 생기면 그거 개인 책임으로 돌리실 텐데 그걸 허락하시겠어요? 그리고 이 내용을 누가 전달하냐고요. 교장 선생님 만나는 거 좀 부담되는데….”

그때는 몰랐다. 나와 같은 장애 부모들이고 나와 비슷한 처지이니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착각은 자유였다는 것을.

“저희 과반수가 동의 후, 단체로 찾아뵙는 것만 부담된다면 제가 대표로 가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교장 선생님 만나는 것을 마치 죄인처럼 어렵게 생각하고 겁먹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내 한마디에 나와 반대자 엄마 간에 묘한 신경전이 카페에 오가다 모임이 마무리됐다.

“예준 엄마, 냅둬! 저 엄마는 구태여 자부담하고 싶지 않은 거지. 자기 아이가 이 중에서 제일 장애가 심한테 구태여 개인부담금 지출해가며 활동보조 선생님 투입에 동의하겠냐고!  가만있어도 가장 중증이면 학교에서 제일 먼저 우대해 줄 거라는 놀부 심보! 딱 그거네. 아니 왜 저러는 거야.” 옆에 있던 제일 나이 많은 엄마가 일어서는 나를 위로하듯 말 했다.

우리는 아직도 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지 못하고 오로지 내 장애 자녀만 높이고 편하게 살도록 길을 닦아주면 된다는 욕심을 반성해야 한다. ©픽사베이우리는 아직도 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지 못하고 오로지 내 장애 자녀만 높이고 편하게 살도록 길을 닦아주면 된다는 욕심을 반성해야 한다. ©픽사베이

장애아이를 키우는 해가 거듭될수록 지금도 느끼는 것은 역시나 사람이 모이는 곳은 장애, 비장애 부모라는 이름표와는 상관이 없다. 비슷한 상황과 자녀의 관심사를 가진 또래 부모집단이 모이면 그 어느 집단이라 해도 그 안에 미세한 시기와 질투 약간의 경쟁심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유아기에 발달센터에서 만났거나, 같은 장애 명을 받은 부모라 해도 상대방의 장애아이와 지금의 내 아이를 비교해가며 한때는 치료실 정보를 공유했던 사이도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견제의 상대가 되어있다며 험담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특히나 장애 부모라는 이름표를 부여받은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식을 통해 ‘감사’와 ‘겸손’을 배우라는 하늘의 깊은 사명을 부여받은 자들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모라는 이름표를 지닌 사람에게 ‘자식 보호’라는 본능은 죽음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장애 부모는 장애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그 마음이 더 절박한 것이 일까?

아들을 키우며 지금도 우리 장애 부모들 주변을 들여다본다. 때로는 오히려 비장애 부모들보다 장애 부모들 사이에 이에서 더한 시기와 질투로 서로 경쟁하듯 험담하는 모습에서 나는 슬픔이 밀려온다. 우리는 아직도 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오로지 내 장애 자녀만 높이 그리고 편하게 살도록 길을 닦아주면 된다는 욕심이 가득한 것이다. ‘부모라는 인간 세계는 여기도 똑같구나, 아니 더 하구나!’

작은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거대한 '나비효과'라는 힘을 만들어내듯 장애인 부모들부터가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배려하지 않는다면  비장애인들에게 있어 장애인들은 그저 도움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며,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배려를 강요하는 이익 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내 자녀가 편안한 만큼 조금은 덜 불편한 장애인이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장애인 전체가 살기 좋은 세상 그 원대한 꿈을 함께 꿀 수 있다. 그래야 장애인들도 살만한 세상! 함께 대우받는 세상! 이 온다. 내 아이가 조금은 남에게 배려하고 때로는 부모 없이 홀로 힘든 경험도 해 봐야만 언제고 장애 자녀와 아름답고 뜨거운 이별을 맞이할 것이다.

‘예준아, 일어나야지! 토요일 아침인데 우리 아들, 엄마랑 오늘 잠실에 그림 그리러 놀러 갈 건데 어때? 오늘 예준이는 뭐 그리고 싶어? 엄마랑 끝나고 뭐 먹을까?’ 드디어 2차 드로잉 실기 시험날이다. 시험장까지 긴장한 탓에 마치 내가 수험생인 양 말이 많아졌다.

행여 놓칠세라 꼭 잡은 아들 손, 잠실 시험장까지 지하철 여행이 시작됐다. “어머, 우리 여기서 또 만나네요? 예준이 맞죠?” 시험 대기실에서 우연히 만난 발달센터 동기생 엄마와 응원의 눈인사를 주고받는 순간, 내가 진짜 시험장에 왔음을 실감했다.

“자, 지금부터 보호자 분들은 함께 착석하셔서 수험생이 혹시 모를 과잉행동이 있으면 제지해 주시되 어떠한 것도 말로 지시하거나 개입하실 수 없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시험은 1시간 동안 이루어지며 저희가 책상에 제공해드리는 재료만을 이용해 주시고 자유롭게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면 됩니다. 조형으로 표현하셔도 무방합니다. 2차 실기시험,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험이 시작됐다.

책상 위 재료는 색종이 묶음, 8절지 켄트지 한 장, 마커펜, 클레이, 크레파스, 가위, 풀이 전부다. ‘맙소사! 눈 씻고 찾아봐도 예준이의 최애 재료인 색연필이 없다!’ 마커펜은 다뤄본 적도 없는데 큰일이네….’ 그 순간, 내 귀에 들리는 혼잣말 소리로 아들의 불안이 시작됐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계속해서 예준이의 시선은 자신의 가방 속에 가져온 색연필을 꺼내고 싶다는 듯 머물렀고, 계속되는 혼잣말 속에 색종이 한 장을 만지작거리기만 10여 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도 뭔가를 그릴 맘도 색을 칠할 맘도 없어 보였다.

엄마인 내가 차라리 시험장 밖에서 이 상황을 못 봤더라면 맘이라도 편했을 건만 눈앞에서 지켜만 보고 개입도 할 수도 없으니 속이 타들어 갔다. 고학년생은 그림을 제법 그려본 듯, 연필과 마커펜으로 동물이나 풍경을 막힘없이 그리는 듯했고, 발달센터 동기생 아이도 뭔가 열심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11명 시험 응시한 장애아이들과 부모들을 두리번대고 있는 게 아닌가?

“예준 학생, 시작해야 할 텐데? 왜, 뭐가 문제 있나요?”라며 시험감독관 한 마디에 “색연필이 없어서요.” “그래도 여기 있는 거로만 하는 게 원칙이니까 이걸로 해보는 거야.”

지나던 시험감독관이 시작조차 하지 않는 예준이의 행동에 한 마디 던지자, 다행히 받아들인 걸까? 그때부터 예준이는 노란 색종이 한 장을 도화지 한가운데 풀로 붙이고 또 한 번 멍하니 있더니 하트인 듯한 무늬를 색종이 안에 4열 종대로 그려내고 가운데는 엉킨 실타래 같은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얘가 뭘 그리는 거지? 주제가 행복했던 순간인데….’ 바라보는 나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옆에 크레파스로 쓴 제목, ‘하트 하수구 판에 걸린 머리카락’. 뭔가 색칠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이게 끝이라니….’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복도 세면대 하트 하수구 덮개판. 예준이는 이걸 바라볼 때 가장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네이버 플러스 스토어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복도 세면대 하트 하수구 덮개판. 예준이는 이걸 바라볼 때 가장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네이버 플러스 스토어

그 순간, ‘어쩜 좋아! 이러다 떨어지겠구나.’

애가 타는 나는 도화지를 뒤집어서라도 다시 그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들의 시험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시험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엄마의 애타는 속도 모르고 시험이 끝난 뒤 하나둘씩 퇴실하는 수험자들 사이로 자신의 가방에서 개인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내 만지작거리더니 나를 향해 미소짓는 아들. 그 모습을 한 여성 작가 심사위원분이 유심히 보시곤 홀연히 시험장을 떠나셨다.

긴장이 풀리자 내 등거리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오늘 시험에 욕심을 부리고 에어컨 속에서 땀까지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 우리 예준이와 잠실로 지하철 여행을 했으니 그거면 된 거야. 예준이 스스로는 낯선 장소에서 색연필이 없는데도 한 시간 동안 자신과의 싸움에서 잘 참아 낸 것만으로도 너무 잘 한 거야! 잘했어. 기특하다. 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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