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마이너 창간 3주년 기념 연속 강좌 두 번째 시간, ‘노동의 인간학을 넘어서’ 강의가 13일 늦은 7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열렸다. |
지난 2010년 1월 이명박 정부는 노동할 능력이 있음에도 노동하지 않는 빈곤층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는 이유 등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근로능력판정을 도입했다.
근로능력판정 도입으로 수급자는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와 근로능력이 없는 수급자로 나뉘며,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는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수급을 하고 있다. 또한 의료급여도 근로능력이 없는 가구(1종)와 근로능력이 있는 가구(2종)로 나눠 근로능력이 있는 가구에는 본인부담금을 더 내도록 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근로능력판정은 근로무능력자와 부양의무자가 없는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던 이전 생활보호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와 충돌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몇몇 반빈곤운동단체를 제외하면 근로능력판정 도입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노동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노동으로 자신의 생활을 꾸려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우리사회에서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정의를 그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장애인과 노동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강의가 지난 13일 늦은 7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동의 인간학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강의는 비마이너 창간 3주년 기념 연속 강좌 두 번째 시간으로 수유너머N 이진경 연구원이 진행했다.
![]() ▲비마이너 창간 3주년 기념 연속강좌 두 번째 시간에 참가한
사람들. |
“과연 인간의 본질이 노동일까?”
이 연구원은 “노동의 개념에 대해 가장 애착을 두는 사람들은 노동자 계급이거나 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면서 “그러나 나는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정의에 반감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를 당한 수많은 가장이 차마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아침에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나가 산이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때 퇴근한 것처럼 집에 들어갔다”라면서 “그들은 그 사실을 말하는 순간 ‘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을 위치를 잃어버렸다’라는 고백이 되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이처럼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정의는 사회적으로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주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라면서 “따라서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폭력적인 정의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더구나 같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절대화되어 있으면 생산성이 낮은 장애인과 같은 사람들은 경제학적으로 도태의 대상, 즉 죽어도 마땅한 존재가 된다”라면서 “우선 노동의 개념이 어떤 방식들로 정의되고 그것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검토해보자”라고 밝혔다.
철학적·경제학적·정치학적 노동의 개념들
이 연구원은 노동의 개념을 철학적, 경제학적, 정치학적 관점에서 정의하는 방식을 차례로 소개했다.
이 연구원은 “먼저 철학적 관점에서는 노동을 '합목적적 활동'으로 본다”라면서 “꿀벌과 거미는 본능으로 집을 짓지만 인간은 설계도를 가지고 집을 짓는데, 이처럼 시작과 동시에 끝을 생각하며 하는 합목적적 활동을 노동으로 정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그러나 이 정의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정의를 자화자찬으로 확대한 것이며 사냥을 하는 동물이나 꽃을 피우는 식물도 합목적적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생명의 본질에 더 맞는 이야기”라면서 “더구나 이 정의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활동은 노동이 되므로 현실적인 노동의 정의와는 상관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우리는 대학로 길거리에서 음악을 틀고 힙합을 추는 젊은이들은 논다고 하고 큰 무대에서 백댄서로 힙합을 추는 젊은이들은 노동한다고 말하는데, 놀이와 노동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돈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여부”라면서 “이것이 경제학적 관점에서 노동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으로 현실적인 노동의 정의”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따라서 노동자는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돈을 받고 하기에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므로 노동에는 강제와 고통이 따르게 된다”라면서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을 노동으로 정의하면, 결국 고용되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다음으로 맑스가 ‘자본’에서 발전시킨 정치학적 노동의 개념이 있다”라면서 “이 관점에서는 노동을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사용가치로 정의하며,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력이 상품화된 사회를 뜻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치학적 노동의 개념으로 노동 과정을 보면 앞서 철학적,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수 없었던 계급 간의 적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노동 과정에서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뜻과 노동을 시키는 자본가의 뜻이 서로 충돌하면서 공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은 “장인과 도제가 노동을 담당했던 산업혁명 이전의 중세시대에는 노동 현장을 노동자들이 장악하고 있어 자본가들은 노동 과정에 참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라면서 “그러나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자본가들은 노동과정을 쪼개는 분업과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계를 도입하는 방식 등으로 노동 과정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했으며, 결국 노동의 방식과 속도까지 모두 자본가들이 장악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세 가지 노동의 개념을 소개한 이 연구원은 “우리는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에 따라 적절한 노동의 개념을 선택해 써야 하는데, 어떤 노동의 개념도 ‘인간’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면서 “그럼에도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일을 더 시키기 위한 속임수라고 볼 수 있으며,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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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절대화한 세 가지 대가
이 연구원은 “우선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고 하면 노동할 수 없는 인간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철학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라면서 “이 경우 백수와 같이 노동하지 못하는 이는 물론 실업자와 같이 노동하지 못하는 이, 장애인처럼 노동하기 힘든 이까지 인간이 아니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경제적 대가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라는 ‘무노동 무임금’의 논리를 제대로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 “이것은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마다 자본가들이 들이대는 이야기이고 나중에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배상도 다 이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또한 노동할 수 없는 상황을 인간의 자격이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노동의 강박에 사로잡히게 된다”라면서 “‘노동하지 않아도 살만큼은 돈을 줘야지’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노동하지 않으면 돈 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정치적 대가에 대해서는 “노동을 무조건적으로 생존의 전제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자본가에 대한 복종이 시작되며, 심지어 자본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과 동일시하는 착각까지 발생한다”라면서 “그래서 자본가들의 무능력이 드러나는 경제위기 시기에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을 도태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보수정권을 지지하기도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이라고 지적했다.
인위적인 장애의 체계, 자본주의
이어 이 연구원은 자본주의 체계가 역사적, 논리적으로 볼 때에도 사람들의 생존조건을 '절단'함으로써만 유지가 가능한 인위적인 장애의 체계라고 설명했다. 인위적인 장애의 체계에서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장애자’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임금을 받는 한에서는 자신이 ‘장애자’임을 잊고 있다는 게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이 연구원은 “자본주의 이전에 사람들은 공동체 단위에서 먹고 살았기에 공동체 전체가 굶는 일은 있어도 특정 개인이 굶는 일은 없었다”라면서 “그러나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영국에서는 양을 키운다는 이유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사람들을 내쫓아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고,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서는 식민주의자들이 원주민들의 생존조건인 빵나무를 베고 공유지를 뺏는 식으로 공장에서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자본주의는 노동력을 팔 노동자가 없이는 시작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생존조건의 절단은 결과가 아니라 전제”라면서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 무산자를 만들었으므로 우리는 자본주의에 무산자에 대한 생존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아울러 산업예비군으로서 실업자가 있어야만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기에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주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노동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사회적인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라면서 “달리 말하면 생존의 문제는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노동과 임금의 문제와 무관한 것이며, 여기에는 애초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의 생존조건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이 연구원은 장애인의 생존조건을 사회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방안과 노동의 가치화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연구원은 “노동능력 평가에서 장애인들은 이른바 ‘정상인’들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되고 생산성 비교에 의해 열등한 지위를 부여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라면서 “장애등급제에도 노동력들의 우열을 부여하려는 발상이 깔려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이러한 발상은 결국은 파시스트의 인종주의적 발상과 닮아 있는데, 19세기 당시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는 코르셋을 벗자는 식의 건전한 운동을 하던 페미니스트들도 좋은 신체와 나쁜 신체를 구별하는 논리에 빠진 나머지 나중에 파시스트 운동으로 나간 역사적인 사례도 있다”라면서 “신체적인 기준으로 신체, 노동, 활동 등에 대해 우열을 부여하는 순간 이미 반 이상은 파시스트의 인종주의 이론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따라서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장애인의 삶은 노동과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사람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 비용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반면 페미니즘에서 ‘가사’를 ‘노동’으로 확대해서 ‘가사노동’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처럼 노동의 가치화를 확대하는 방법도 있다”라면서 “가령 예술가들이 창작활동 전체를, 학생들이 공부하는 행위를 노동으로 간주해 지급을 요구할 수 있는 것처럼 장애인들도 활동의 정서적 가치를 노동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연구원은 “그러나 노동의 가치화를 확대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판단도 없이 모든 활동이 노동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만약 어떤 것은 노동이고 어떤 것은 노동이 아니라고 하면 결국 우열과 가치평가가 필요해 결국 관리상의 문제가 대두하고 등급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연구원은 “또한 모든 활동을 노동화하는 방향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문부터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기에 장애인의 활동에 대해 정서적 가치를 지급하라는 요구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그러나 생존은 노동과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이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라고 했을 때 장애인이 가장 선차적인 고려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날 강의를 마무리했다.
![]()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을 하는
참가자들. |
기본소득은 총자본인 국가에 대한 요구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참가자는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장애인의 생존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람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자본주의 유지를 위해 실업자 문제 등을 책임지는 역할은 개별 자본가로는 취약해 국가가 자본의 논리를 정책적으로 관리하며 그러한 역할을 맡고 있다”라면서 “따라서 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총자본으로서의 국가에 대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라고 답했다.
이어 또 다른 참가자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총자본인 국가에 요구해야 하는데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면 운동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보다는 최근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생기면서 중증장애인들의 노동 현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의 활동에 대한 정서적 가치에 대해 최저임금을 지급하라는 식의 요구가 운동의 측면에서는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기본소득을 한 번에 도입하는 방안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렵고 각자가 자신의 주어진 조건에서 생존을 보장하라는 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라면서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저항이 크겠지만 장애인, 아동, 노인 등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본소득 도입은 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이 많아져 이들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하는 것이 우열구조와 차별구조를 철폐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라는 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그 경우에는 노동자들이 지금의 자본주의 시장에서 권리를 주장하고 인정받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겠으나, 그 과정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확장된다면 시혜와 동정의 관점은 줄어들 것”이라면서 “그러나 노동의 유무와 상관없이 생존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면서 장애인의 활동에 대한 정서적 가치를 노동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 노동하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기준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강의는 약 7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띤 분위기 속에서 3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한편, 지난 2월 28일 늦은 7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비마이너 창간 3주년 기념 연속 강좌 중 첫 번째 시간으로 수유너머N 이진경 연구원의 ‘폐를 끼치는 자들의 존재론’ 강의가 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