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함께 세상 속으로…
- 균도와 걷는 세상이야기 61
예순한번째날 이야기(5월11일)- 2011.05.12 00:24 입력 | 2011.05.12 00:52 수정
징검다리 휴일, 균도를 복지관에 보내고 오래간만에 사무실에 앉았다. 아직 어지러이 놓여 있는 사무 집기들이 여행 후유증의 내 마음처럼 아직 널브러져 있다. 며칠 뒤에 열리는 균도와 세상 걷기 행사를 마치고 천천히 치워야지 마음먹는다.
후원관계로 여러 곳에 연락도 하고 그날 취재문제로 몇 군데 팩스를 넣는다. 여행을 끝내고 난 뒤 황홀경에 서 있다. 익숙지 않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 정리해본다.
균도와 세상 걷기에서 난 몇 가지 이슈를 세상에 던졌다. 그 첫 번째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라는 물음표였다. 발달장애인 가족은 누구보다 엄마에게 아이들을 강요하고 있다.
여타장애인도 마찬가지지만, 엄마는 아이의 그림자 역할을 강요당한다. 내가 장애인부모회에 발을 들였을 때도 아빠의 존재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지금도 역시 소수로 남아 있다. 장애인의 아빠로 산다는 것이 너무나 힘든 것일까?
장애인 가족은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는 그것도 허물이 되는 양, 혹시 나가서 나를 보게 되더라도 아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다. 알면 알았지 굳이 밝히지 말라고 하는 세태가 장애인계를 이렇게 키웠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균도랑 같이 말아톤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무작스럽게 울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비겁한 아빠의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비참해서 그렇게 울었다.
아마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이제 밖에서 떳떳하게 밝히자… 이렇게 말하고 생활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것은 동정과 시혜였다. 아마 나 역시 그 사태를 야기했다고 생각했다.
몇 년 동안 장애인부모회에서 열심히 일했다. 엄마를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쫓아다녔다. 조금 문제를 알게 될 즈음에 관공서에서는 당신들은 전문가가 아니고 장애인 부모이기 때문에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역시 장애인계에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라고 해서 또 그쪽에 서질 못했다.
우리 발달장애인은 자기 스스로 서기 힘들다. 부모가 당사자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힘들게 대학교에 편입해서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시작을 알리는 길이 균도와 세상 걷기였다.
가정에서 언제나 방관자일 수밖에 없는 아빠를 깨우고 싶었다. 강한 엄마지만 자녀문제에서는 언제나 약자일 뿐이다. 그래서 아빠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부모회에 나가도 아빠는 소수다.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빠가 나서야 우리는 발전할 수 있다. 엄마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경험이 많은 아빠가 대항해야 의지가 생긴다.
그런 나의 소망에서 균도와 세상걷기를 계획했다. 사회복지사의 눈으로, 아이 활동보조인의 눈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발달장애인의 어려움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우리 발달장애인의 70% 정도가 남자인 까닭도 아빠가 손을 잡아야 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첫 번째를 시작했다. 이번 결과의 성공 유무를 떠나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 아니 이미 계획된 일 중 하나는 ‘아버지와 같이 떠나는 세상 속으로…’이다.
그 일을 빨리 같이 하고 싶다. 세상으로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같이 들어가는 것이다. 가자, 아버지와 함께 세상 속으로…
▲출발하기 전 균도와 웃기 연습 중.▲아빠와 세상속으로…
이진섭 부산장애인부모회 기장해운대지회장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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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복지
2011.05.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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