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가 보도한 택시 블랙박스 화면입니다. ⓒ JTBC |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Pieta)가 가장 큰 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아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던 지난 9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한 요양병원 앞 차도를 지나던 택시의 블랙박스 화면에는 구급차 위로 떨어지는 사람의 형체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그 블랙박스 화면은 종합편성채널인 JTBC가 입수해 여섯 밤이 지나고서야 뉴스로 방영되었습니다. 투신한 사람은 파킨슨병과 심혈관 질환을 앓던 김아무개 씨(68세)였고, 투신한 지 4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김 씨는 4년 전 치매에 걸려 다른 병원에 입원한 아내와 매달 70만 원가량 드는 아들의 병원비 부담을 늘 걱정했다고 합니다.
김 씨는 두 달 전 요양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반지하방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 살다가 지난해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아내도 같은 처지일 것으로 생각한 김 씨는 “내가 죽으면 아내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JTBC의 취재 결과 김 씨의 아내는 시설수급자였습니다.
광화문역에서 한 달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은 지난 20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후보와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현재 박근혜 후보는 ‘보편적 복지’에 맞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이야기하며 대선 공약을 총괄할 국민행복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있습니다. 박 후보가 추구하는 복지의 초점이 맞춤형이므로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에 미온적일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저소득층에 사회보험료를 지원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재산소득환산제를 개선하는 수준에서 복지 사각지대 해소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 ▲'부양의무제 폐지 없이는 국민불행'이라는 손 피켓을 든 참가자들의 모습입니다.
|
그래서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사람들은 ‘부양의무제 폐지 없이는 국민 불행’이라는 자그마한 피켓을 각자 들고 있었습니다. 부양의무제로 말미암아 수급자가 되지 못하거나 수급자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국민 행복’을 말하는 것은 '기만'이라는 지적입니다.
지난 2010년 10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 내가 죽으면 동사무소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이후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해부터 사회복지통합관리망 도입으로 부양의무자 확인조사가 강화되었습니다. 사위의 소득으로 수급 탈락 통보를 받고 지난 8월 거제시청 화단에서 제초제를 마시고 숨진 할머니도 '살아가기 힘든데 기초생활 지원금 지급이 중단된 게 원망스럽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바 있습니다.
그러나 부양의무제로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고 가장 높다는 나라, 34분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나라에서 언론의 보도로 접하는 죽음의 행렬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최근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지난 100일 사이에 입주민 7명이 투신하거나 목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결국 수급 탈락과 수급비 삭감으로 닥친 생활고가 주원인이었습니다.
한편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원주와 서울에서 두 명의 장애인이 장례식과
노제, 추모문화제가 치러집니다. 두
사람은 장아무개 씨에게 입양되어 원주 ‘사랑의 집’에서
살다가 굶어 죽은 뒤 병원 냉동실에 10년, 12년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또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가족과 개인에게 떠넘긴 결과였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그렇게 벼랑 끝으로
떠밀었습니다.
‘피에타’에서 ‘강도’라는 인물은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의 신체를 절단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을 타게 해 사채자본을 회수합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예산의 범위라는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에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을 눕혀서 침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팔다리와 목을 자르고 있습니다.
‘피에타’가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다룬 작품성을 인정받아 황금사자상을 탔다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이제 막을 내리도록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 ▲ 장애가 있는 아들의 수급권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를 추모하는 위령제 모습입니다.
|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