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늦은 2시와 6시, 2회에 걸쳐 인천 부평문화사랑방에서는 지적장애성인들이 직접 배우로 나선
연극 ‘꿈의 공장’이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올 한해 인천 작은자야학에서 지적장애성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극수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
“(지적장애성인을 대상으로) 야학에서 문해반 기초수업을 4년 정도 했는데 그곳에서 쌓이고 쌓여왔던 고민들을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찾은 게 연극이었어요. 그전에 행사 위주로 된 공연을 올린 적은 있지만 정규수업으로 만든 건 올해가 처음이었죠.
이제는 야학에서 이 수업을 정규수업으로, 지속 가능한 수업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고민이 남아 있어요. 어떻게 지속 가능한 커리큘럼을 만들
것인가? 고민이 들어요. 외부 전문가 집단에서 강사가 와서 작업하는 게 아니라 작은자야학 안의 고민 있는 교사들이 지속 가능한 수업으로
만들어보는 거죠.” (작은자야학 이경진 교사, 연극 ‘꿈의 공장’ 연출)
지난 22일 늦은 2시와 6시, 2회에 걸쳐 인천 부평문화사랑방에서는 지적장애성인들이 직접 배우로 나선 연극 ‘꿈의 공장’이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올 한해 인천 작은자야간학교(아래 작은자야학)에서 지적장애성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극수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작은자야학 김원호 교사는 “책상 없고, 의자 없고, 글자 없이 수업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업에서 책상과 의자를 빼기로 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수업도 야학이 아닌 외부공간에서 진행했다.
교사는 작은자야학과 민들레장애인야학(아래 민들레야학)에서 만난 야학교사들의 연극모임 ‘극단적게으른사람들(아래 극게사)’이 주축이 됐다. 극게사는 야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극 수업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으로 작년과 올해 두 번에 걸쳐 창작극을 올린 바 있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다음 주에는 어떤 수업 해요?’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학생분들이 매우 수다스러워졌어요. 저 또한 교사지만 지적장애인이나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분명히 있었는데, 학생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뜨리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결국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다 똑같구나, 싶었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얼마만큼 이야기해왔고 또 어느 정도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는가 고민이 들었죠.”
김 교사는 “지적장애성인들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만, 교과 수업시간에는 이야기하지 않기가 강요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즉, 지적장애성인은 그 어디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공간을 가질 수 없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통합수업을 하는 작은자야학에서 소수 비장애인에게 관심이 더 쏟아지면서 다수 지적장애성인은 소외됐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찾은 것이 연극이었다. 올 한해 처음 이뤄진 연극수업에는 교사 7명에 지적장애성인 15명이 참여했다.
야학에서 문해수업을 하던 교사들은 더 이상의 수업이 불가능한 지점에 다다르자 포기하거나 낙담하게 되었고,
‘지적장애성인에게 교육이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품게 되었다. 괴로운 건 학생인 지적장애성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몇 년을
책상 앞에 앉아 한글을 배워도 실력은 늘지 않았다.
학생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연극수업은 연극놀이부터 진행됐고, 놀이를 통해
감각을 깨우고 어느 정도 친밀감을 형성한 뒤에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서로 들어주는 과정을 거쳤다. 그 이야기 속에서 교사들은
이들 삶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작업장’이었다.
“사진을 보고 사진 속 장면에 대해 말해보는 수업이 있었는데, 학생분들이 작업장 사진을 보고 작업장에 대해 재밌게 역할극과 즉흥극을 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공연용 이야기에는 작업장을 배경으로 해야겠다고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데 교사들이 대사를 쓴다고 해서 대사가 잘 나오지 않을 텐데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칠판에 학생 이름을 하나씩 다 썼어요. 그리고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것을 한 명, 한 명씩 적어봤죠. 미경 씨에게는 노래를, 은삼 씨에게는 이소룡 흉내 내는 걸 반드시 포함해야겠다, 그리고 이 중 몇몇은 대사가 되니깐 긴 대사와 연기를 맡겨도 될 것 같고.
그렇게 나눈 뒤 작업장 배경과 학생들 특징에 대해 민들레야학 박장용 교사가 초안을 짜 왔고 그 후에 살을 계속 붙여나갔죠. 이경진 교사가 연출을 맡아서 잘라낼 것 잘라내고 살 붙여나가고. 학생들 개개인의 경험과 그것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교사와 학생과의 친밀함이 바탕이 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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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꿈의 공장’은 지적장애인들이 일하는 작업장을 배경으로 한다. 국민체조를 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나면 사장이 인원 체크를 한다. 그리고 사장은 외친다. “일하세요!”
누런 비둘기색 작업복을 입은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일을 진행한다. 무대 위 일상적 풍경이 매우 익숙하며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 지루한 공간에 어느 날, 새가 날아든다. 새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새가 노닐다 간다. 새가 노래하는 시간, 지루한 일상의 시간은 멈춘다. 그 모습을 본 사장은 말한다. “새, 죽이세요.”
새 두 마리는 쫓겨나고 무대 앞에 남은 한 마리의 새. 붉은 조명, 날개가 꺾인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반복적인 일상의 현실로 돌아온다. 그때 같이 일하던 한 동료가 바캉스를 떠나는 차림에 캐리어 가방을 끌고 나타난다.
“나, 샌프란시스코 갈래.” 동료들에게 묻는다. “같이 갈래?” 동료들은 “아니, 일해야 해”, “돈 없어”라는 말로 그를 배웅한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작업복을 어깨에 걸친 채,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현실. 이번에는 허름한 차림의 세 명의 사내가 나타난다. “일 좀 주세요.” “배고파요, 추워요.” 사장은 그들에게 “일없어요! 나가세요!” 윽박지른다.
그걸 바라보고 있던 작업장 내 사람들은 그들에게 상자를 펴 자리를 내주고, 장작불 펴주듯 초코파이를 건넨다. 초코파이 한 입 베어 물고 덩치 큰 사내가 묻는다. “산타를 믿으세요?” 잠시 정적. 그는 이렇게 외치고는 사라진다. “믿거나 말거나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하얀 눈이 내린다. 무대 위에 내린 눈은 물방울처럼 통통 튕겨 나와 객석으로 흘러넘친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무대 위 배우들과 함께 풍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눈싸움을 한다.
어느새 무대 위에는 커다란 카트를 탄 산타가 나와 배우들에게 소원을 묻는다. “네 소원은 무엇입니까?” “이소룡이요.” “요리사요.” “대통령이요.” 소원은 “이뤄졌습니다”라는 산타의 한 마디에 즉시 이뤄진다.
사람들 소원은 현실이 되어, 무대 위 패션쇼장이 되어 펼쳐진다. 각자가 바랐던 모습대로 무대에 서서 그 사람이 되어 걸어본다. 이소룡이 되어, 가수가 되어, 회장이 되어, 대통령이 된 모습으로. 한여름밤의 꿈처럼 한바탕 잔치가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현실. 꿈을 몸에 걸치고 현실로 돌아온다. 작업장에서 오늘의 그들은 또다시 현실을 살아간다. 그 모습이 똑같으면서도 몽롱하고 낯설다. 꿈을 꾸는 것, 거기서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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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꿈의 공장’은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일상적 장소인 작업장에서
시작해 꿈을 경유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김원호 교사는 “어렸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요즘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작업장에서의 일을 이야기한다”라며 “그러나 역시 결국 꿈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이길 수 있는 게 꿈이라면, 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거와 현실을 이야기하고 난 후에는 결국 이야기의 방향도, 삶의 방향도 미래로, 꿈으로 흐른다.
이번 연극의 연출을 맡은 이경진 교사는 “수업할 때 ‘꿈이 뭐에요?’라고 물어보면 간호사, 대통령 등 우리가 어렸을 때 답하는 구체적 방식으로 꿈을 답한다”라며 “그러한 꿈이 정말 그들 속에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이가 쉰 살임에도 의사라는 꿈을 가진 것이 인상 깊었다”라고 전했다.
이번 연극을 관람한 민들레야학 박길연 교장은 “지적장애인은 하나를 습득하는 데에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데 연극 속 작업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익숙해 보여 충격적이기도 했다”라며 “지적장애인은 일이 아니면 개인적 생활이 없는데 그러한 모습이 연극에서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들었고, 지역사회에서 취미생활을 비롯한 또 다른 삶들이 보장되었으면 한다”라고 답했다.
박 교장은 “본인의 꿈 이야기가 반영된 내용인데 그러한 꿈을 펼쳐보지 못한 채 좌절해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나기도 했다”라면서도 “지적장애인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기 때문에 유일하게 소통하는 공간이 야학인데, 평소에 봤던 사람들이 이런 표현을 하니 재밌었다”라고 전했다.
장애인극단 ‘판’에서 활동하는 표미라 씨는 “누가 대신 꾸민 작품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그들 자신인 것 같아 좋았다. 반복적 일상 속에서 꿈을 꾸는 모습은 장애인, 비장애인 상관없는 삶의 일부분 아닌가?”라며 “장면 하나하나가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수업 속에서 얻어진 것 같았는데, 그러한 꾸미지 않은 솔직함이 더 연극적으로 다가왔고 무대에 오른 본인들도 즐거워 보여 좋았다. 지적장애성인의 ‘스토리텔링(이야기 나누기)’이 무대 위에서 실현되는 것 같았다.”라고 밝혔다.
또한 표 씨는 이번 연극을 통해 장애인연극 작업을 하는 자신에게도 하나의 물음을 품게 됐다고 답했다. 표 씨는 “극단 ‘판’은 비장애인들이 만든 틀에 장애인이 들어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은 내게 ‘왜 거기 들어가려고 하는가?’라고 물음을 던진 작품이었다”라며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라고 했다.
작은자야학에서 고등졸업 검정고시반 국어수업을 하는 민경환 교사는 “함께 야학을 다녀도 대화를 잘 안 하는데,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이 꿈과 바람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마음이 뭉클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연극에 참여했던 작은자야학 학생 김승환 씨는 “연극 수업하면서 노래와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이 재미있었다”라며 “문해수업보다 연극수업이 더 재미있다. 내년에도 또 하고 싶다.”라며 올해 진행된 연극수업에 대해 만족감을 표했다.
한편, 이번 공연은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인천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진행된 반짝별 문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열렸다. 반짝별문화제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감수성으로 펼쳐지는 문화제로 올해 2회째를 맞이했다.
△ 연극 '꿈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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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