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세종은 의사소통 문제로 차별받고 있는 청각장애인들의 문제를 묵과하지 못하여 이 자리에 섰노라. 청각장애인들이 차별을 받았던 이유는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이를 법률에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나 세종은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해 한국에서 통용되는 독자적인 언어로 수화를 인정하고 이를 증명하노라.”
수화언어 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수화언어권공대위)는 14일 늦은 1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출범식과 수화언어 인증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 출범식에서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회장은 “수화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많은 차별을 받아왔으며, 이러한 차별은 나뿐만 아니라 나의 동년배나 선배들, 그리고 지금의 후배들도 받고 있다”라면서 “지난달 만들어진 수화언어권 공대위는 지금까지 지속해온 이러한 문제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오늘 출범한다”라고 선언했다.
김 회장은 “수화언어권 공대위는 영화 도가니, 장애인정보문화누리와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활동이 만든 떡잎을 농교육이라는 큰 나무로, 수화가 하나의 언어라는 꽃을 피우는 데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피나는 투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앞으로 공대위가 소중한 결실을 쟁취할 수 있도록 투쟁의 대열에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비준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토록 하고 있으나, 사람이 죽어나가도 FTA(자유무역협정)는 지키려는 정부가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은 죽어도 지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라면서 “수화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 배워야 할 언어이기에 정부는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고 학교에서 수화를 하나의 과목으로 배울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을 위해 학교에 방문했을 때 통합학급에 있는 청각장애학생들은 보청기를 끼거나 인공와우 수술을 받는 등 장애인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라면서 “한 청각장애학생은 면담에서 ‘사실은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지만, 어머니가 가슴 아파할까 봐 잘 듣는 척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박 사무국장은 “만약 수화가 청각장애인만 아는 언어가 아니라 누구나 아는 언어라면 청각장애학생들은 그렇게 차별과 외로움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이는 청각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각장애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화로 자기소개를 한 장애와여성 인권연대 마실 김광이 대표는 “예전에 시설에서 1년 동안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필담만으로는 소통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따라서 수화가 언어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청각장애인들은 계속 차별과 단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면서 “또한 청각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섬에 살고 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식으로 자조적으로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런 현실을 타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드림장애인인권센터 박흥기 대표는 “청각장애학생 2명이 다니는 대전 성남초등학교에 수화통역사가 배치되었지만, 신체의 부분을 뜻하는 다리와 건너다니는 다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등 통역이 엉터리였다”라면서 “이에 교육청에 수화통역사를 교체하라고 요구했지만, 교육청에서는 ‘수화통역을 잘하는 교사를 왜 바꾸라고 하느냐?’라면서 이를 거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 대표는 “이 문제는 우리 사회 어른들의 책임”이라면서 “다음 주부터 나 혼자 1인 시위를 하더라도 청각장애학생들의 교육권이 보장받을 때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보신당창당준비위원회 홍세화 공동대표는 “맑스가 ‘내가 맺는 사회적 관계의 총화가 나 자신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섬에 살고 있다고 표현하는 청각장애인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서 “비록 진보신당의 정치적 힘이 미약하지만 앞으로 사회적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힘을 모아가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참가자들은 세종대왕에게 언어로서 수화 인증을 청하는 인증식을 통해 정부에 수화의 법적 지위를 인정할 것을 촉구한 뒤 출범선언문을 낭독했다.
수화언어권공대위는 출범선언문에서 “청각장애인 교육의 문제는 교육환경을 조금 개선하고 교사들에게 통역사 자격증을 따도록 한다고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청각장애 아동기부터 수화교육을 하는 등 수화 조기교육이 제도화되어야 하며, 초등학교에서부터 수화통역사 지원이 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수화언어권공대위는 “또한 ‘수화를 하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니 말을 해야 한다’라는 논리로 구화교육이나 인공와우 수술을 부추기고 강요하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청각장애인들의 언어는 수화를 한국어나 영어, 일어 등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라는 것을 법률에 명시하고, 제도화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어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정부중앙청사로 이동해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에게 국무총리 면담요청서를 전달했다.
한편, 현재 13개 장애인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수화언어권공대위는 앞으로 시민단체를 폭넓게 참여시켜 수화언어의 법적 지위 확보를 위한 운동을 사회적으로 확산할 예정이다.
수화언어권공대위는 △공인된 언어로서 수화의 법적 지위 확보 △수화를 일반학교 제2외국어로 채택 △청각장애 아동의 언어선택권 완전 보장 △청각장애인 교육의 근본적인 개선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무총리 면담요청서를 전달한 대표단이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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