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에 진정하는데 그 인권을 판단하는 꼭대기에 인권을 짓밟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정권 말기에 인간으로 사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을 철회하는 것입니다!”
지난 11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현병철 위원장을 연임시키기로 발표한 이후 인권단체 등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장애인계의 저항 또한 거세지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19일 늦은 2시 인권위 앞에서 ‘장애인권 유린한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 결사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현 위원장의 연임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장연은 “장애인계가 수년간의 치열한 투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었고, 이 법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차별사건을 조사하고 시정조치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 인권위이기에 차별과 억압을 당하는 장애인에게 인권위는 더욱 각별한 곳이었다”라며 “그런데 이명박 정권과 현 위원장은 장애인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았다”라고 규탄했다.
이어 전장연은 “앞으로 현 위원장의 연임을 막아내고 인권위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인권위는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모든 목소리를 인권의 차원에서 이야기하기보다 정치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라면서 “인권위 자체를 포기하고 인권을 포기하며, 인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수많은 과정과 눈물을 이제 더는 ‘해봤자 뭐하나’라는 식으로 포기하게 될까 봐 두렵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허무해졌고 개그가 되는 사회가 됐다."라고 비판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2010년 12월 2일과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백 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인권위 건물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후에 인권위가 나서서 보수단체와 함께 건물에 들어간 장애인들을 고소·고발하고, 나를 포함한 4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라고 사건 경위를 설명하며 “그러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한 이가 바로 현 위원장"이라고 꼬집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은 인권위를 장애인 인권의 최후의 보루로 여기며 투쟁했다”라며 “그런데 인권위원장 자신의 문제에서는 폭력적으로 우리를 탄압했다”라고 규탄했다.
국가인권위원회제자리찾기공동행동 명숙 집행위원은 “이명박 정부 5년은 인권의 암흑시대였는데 이러한 빛을 가리는 거대한 장막 중 하나가 인권위원장이었다”라며 “한국 인권후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도 모자를 판에 또 한 번 하겠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숙 집행위원은 “현 위원장이 청문회 준비를 하면서 인권위 직원들에게 시민사회가 무엇을 비판하는지 모니터링해 반박자료를 철저히 준비하라고 했다”라고 전하며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한 줌의 양심도 없이 뻔뻔하고 당당하게 연임 준비하고 있는 게 분통 터진다”라고 토로했다.
명숙 집행위원은 “현 위원장이 청문회 절차에 들어가면 연임은 막을 수 없고 3년 임기는 무조건 보장된다”라면서 “인권위의 독립을 위해 정해진 인권위 법상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국가가 파면할 수는 없는데 현 위원장은 이것을 악용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명숙 집행위원은 “따라서 연임을 막기 위해서는 청문회에 들어가기 전에 청와대가 내정을 철회하는 방법과 현 위원장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 두 가지밖에 없다”라면서 “청문회 절차 들어가기 전에 현 위원장 스스로 물러날 수 있도록 힘들겠지만 같이 싸우자”라며 연대를 촉구했다.
한편 지난 2010년 12월 장애인활동지원법의 올바른 제정과 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 인권위 점거농성에 참여했던 중증장애인 고 우동민 활동가가 이듬해인 2011년 1월 초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바 있다.
당시 고인과 함께 농성에 참여했던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신인기 활동가는 “우동민 동지는 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점거농성에 참여했는데, 지금 그는 이 세상에 없다”라며 “하늘나라에서도 현 위원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있을 텐데 우 동지의 몫까지 열심히 투쟁하겠다”라고 밝혔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강민 사무총장은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은 장애인의 잃어버린 인권을 되찾는 운동인데, 이것을 함께해야 할 인권위가 지금 외면하고 있다”라면서 “현 위원장이 연임하면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이 얼마나 터를 잡을 수 있을까. 장애인들이 얼마나 권리를 획득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으며 현 위원장의 연임을 반드시 막아내자고 결의를 다졌다.
한편, 각 지역에서도 현 위원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인권위 지역사무소가 있는 광주, 부산, 대구에서는 이미 15일부터 현 위원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들어갔거나 들어갈 예정이며, 그 외 여러 지역에서도 대책회의를 꾸리거나 연임 반대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20일 이른 10시에는 인권위 앞에서 인권침해 당사자들의 기자회견을 통해 현 위원장의 연임 사퇴 촉구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