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이룸센터 앞,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외치며 농성한 지 50일째인 지난 9일.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
“농성장에 오래 못 있어. 가봐야 해”
“어디 가는데?”
농성장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한 여성의 말에 농성장 안에 있던 사람이 묻는다.
“갑한테 가봐야 해. 우리의 영원한 갑. 요즘 우리 애가 기분이 안 좋아서 활동보조인도 거부하고 있거든.”
“애들이 우리의 영원한 갑이지.”
여의도 이룸센터 앞,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외치며 농성한 지 50일째인 지난 9일.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하루를 쫓았다.
늦은 2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장애인정책, 화가 난다’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왔다는 광주장애인부모연대 박정선 회장은 부랴부랴 1인 시위 물품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했다.
밖에는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비가 와 서명전은 진행하지 못하지만 1인 시위는 할 수 있다며 우비를 챙겨 입고 국회 앞으로 이동했다. 매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광주에서 올라왔어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발달장애인법을 만들고 싶어요. 그냥 허울 좋은 법이 아닌 실질적인 법으로요.”
박정선 회장의 말이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카메라조차 사용하기 어려운 날이었지만 부모들은 국회 정문에서, 후문에서 피켓을 들고 사람들과 마주치려 애쓴다. 어떤 구호를 외치는 것도, 어떤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양손에 움켜쥔 커다란 피켓이 그들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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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박 회장은 국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국회의원들에게 발달장애인법 제정 동의서를 받기 위해서였다. 박 회장은 이날 광주가 지역구인 국회의원들의 제정 동의서 서명을 맡았다.
“발달장애인법은 19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발의됐어요. 그 뒤로 진전이 없었지만 대선 당시에 후보들이 법 제정을 약속했잖아요. 정부 부처에서는 예산이 많이 들어 제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법에 담은 내용은 참 당연한 권리잖아요.”
박 회장이 국회의원 보좌관을 만나 동의서를 내밀며 말했다.
“내 자식들 내가 죽으면 수급비는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돈만 받으면 뭐해요. 수급비가 많지도 않고. 오히려 직업 교육받아서 스스로 일하면서 사는 게 더 좋죠. 지금 상황에서는 자식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을 수밖에 없어요.”
보좌관은 선뜻 동의서를 받아들면서도 “예산 문제로 법 제정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예산이라는 게 결국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하나를 늘리려면 하나를 줄여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 ▲부모님은 보좌관에게 발달장애인법의 제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
![]() ▲보좌관은 발달장애인법 제정 동의 서명을 했다. |
현재 준비 중인 발달장애인법안에는 소득 보장 부분만으로도 대략 1조 6천억 원가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가 지금처럼 발달장애인이 집 안에서 혹은 시설에서 사회와 단절된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오늘은 동의서까지 받기도 했지만, 그동안 많은 과정이 있었어요. 저번에 어떤 의원실을 찾아갔을 때는 문전박대를 당해 의원님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린다며 소리소리 지른 적도 있었고… 하루아침에 동의서를 써주는 것은 아니었죠.” 국회를 나오며 박 회장은 동의서를 받기까지의 험난한 상황을 설명했다.
발달장애인법안은 지난해 5월 30일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됐고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 등이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약속하는 매니페스토 정책협약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법은 그 후 더 이상의 진전 없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에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는 지난 3월 21일 이룸센터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발달장애인법은 △개인별 맞춤형 지원 시스템 구현 △공적인 원스톱 지원 체계 마련 △기본 생활 유지를 위한 소득보장 장치 마련 △권익옹호 체계 마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을 발의하고 나서 정부 부처에서 법안 검토를 했는데 기획재정부에서는 검토 의견으로 다섯 글자가 왔다고 한다. “법 제정 반대”라고.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는 약간의 이유도 함께 왔다.
“지난해 7월 복지부에서 발달장애인 지원계획을 내놓았는데 언뜻 보면 괜찮을지 몰라도 내용에는 우리가 요구했던 것들이 대거 빠져 있었죠. 발달장애인법을 반대하고 무력화하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아요. 일각에서는 정부가 발달장애인법 제정한다는데 왜 농성을 하느냐고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껍데기가 아닌 실질적인 법이니까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진철 조직국장은 광주에서 올라온 부모에게 발달장애인법 발의 이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6월 임시 국회가 곧 열리는데 정부가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제정하는 것은 어렵다며 오는 14일 복지부 장관과 면담한다고 했다.
“우리가 이제껏 해왔던 모든 투쟁의 방법들을 동원해서라도 열심히 싸울 것이고,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싶어요.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들을요.”
천막농성 50일째, 그 현장에서 만난 이들에게는 자식이 갑이었다. 발달장애인이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그저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지역 복지관이나 센터를 오가며 집에서 또는 시설에서 살아간다면 그들은 눈 감는 날까지 생각할 것이다. 자식보다 하루 ‘더’ 살고 싶다고. 자식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갑으로 ‘모시며’ 살게 하는 그런 삶에서, 세상에서 이제는 벗어나기 위해 이들은 오늘도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맨다.
![]() ▲부모님은 발달장애인법의 진행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왼쪽에는 농성장의 하루 프로그램이 붙어 있다. |
![]() ▲어떤 국회의원이 동의 서명을 했는지, 상황을 벽에 걸어놓았다. 스티커가 붙어 있는 의원이 서명한 의원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