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2.05.08 13:54

우리는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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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휠체어 바퀴가 땅거미처럼 누워있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앞.


“‘왜 휠체어를 타고 있어요?’ 아까 기자 한 분이 다가와 물으시더라고요. 다쳐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쌍용차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묻길래 이 문제는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 답했는데 참 공허하더라고요. 모든 문제가 다 같은가. 내가 여기 왜 있는가. 중증장애인은 노동시장에 진입조차도 하기 힘듭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살아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쌍용차 문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커다란 휠체어 바퀴가 땅거미처럼 누워있는 대한문 쌍용차 희생 노동자 분향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말을 이어나간다.

“사람을 쓰다 버리면 폐기물이 됩니다. 사람을 폐기물로 전락시키는 노동시장의 현실…. 장애인은 집구석과 시설에서 갇혀 살다가, 더는 폐기물로 살기 싫어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싶어서, 그리고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싶어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폐기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고, 또 다른 쪽에서는 폐기물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개의 투쟁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일 저녁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문화제에서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그는 "노동자의 투쟁과 장애인의 투쟁은 만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만나다.'
 
그 말이 참 좋았다. 투쟁의 현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연대’라는 단어보다 ‘만나다’라는 그 말이 내겐 더 깊숙이 와 닿았다. 

“만남은 슬픔이 주는 선물이다.” 이 말이 기억 위로 떠올랐다. 김상봉 선생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우울을 병처럼 달고 지내던 때, 이 말은 내게 작은 위로가 됐다. 책의 거대한 서사는 보이지 않고 저 한 문장에 그저 매료됐었다.

문득 길 위에서 만난 몇몇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속엔 사회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라고 부르는 이들의 얼굴도 섞여 있다. 그러나 내게는 이창근 실장님, 신동기님, 고동민님, 최성국님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귀여운 아이들의 자상한 아버지이자 희망식당의 빼어난 요리사이며, 사랑스러운 남편이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아저씨이다. 그리하여 종종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을 난 자연스레 잊는다. 그러나 그 슬픔은 내게 다른 형태로 덮쳐온다. 

그들을 볼 때면 반가운 벗을 만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종종 썩 좋지 않은 그들의 낯빛을 대할 때면 심장이 한 움큼씩 베어 나가는 듯하다. 입술 껍질이라도 까칠해진 모습을 볼 때면, 조심스레 목이 메어온다.

2차 평택 쌍용차 포위의 날, 울고 있는 가온이를 달래며 안고 있던 고동민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람들 각자가 혼자 있을 때만 짓는 표정이 있다면 그러한 표정이었을까. 그런 눈빛으로 그는 가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기억하는 모습 중 하나는 그렇게 1월의 겨울, 평택 희망텐트 앞에서 울고 있는 가온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그때, ‘어쩌면 보지 말았어야 할 표정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노동절이 이틀 지난 저녁,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문화제에서 상복을 입은 이가 마이크를 잡고 “혹시 이야기 조금 길게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웃음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5월’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복을 입은 쌍용차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이 고 황대원, 고 이윤형 동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09년 5월 8일 어버이날, 쌍용차는 고용노동부에 해고계획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에 맞서 노조는 22일 총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가족의 달이라는 5월, 쌍용차 노동자들에겐 잔인하고 처참한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파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이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 사람은 한쪽 다리에 의족을 꼈던 황대원 동지입니다. 공장 옥쇄 투쟁 때, 의족에서 고름이 나자 사람들이 그만 나가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황 동지는 77일 투쟁 후, 화장실에서 목매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이번에 죽은 이윤형 동지입니다. 말수는 적었지만 파업 당시에도 궂은일을 먼저 하던 동지였습니다. 이 동지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그는 굳은살이 박인 목소리로 덤덤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물둘이라는 숫자에 함몰된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일깨우는 목소리로, 숫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아니 삭제되어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한다. 그가 기억하는 건 ‘스물두 명의 죽음’이 아니라 지난 시간 그와 함께했던 벗들의 모습이다. 지금 그는 자신의 ‘벗’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구나. 그렇게, 영정 속 저들도 살아 있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얼굴 형체도 없이 검게 칠해진 영정 속 얼굴을 그들은 알고 있다. 우리가 ‘스물두 명의 죽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우리와 함께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음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다. 

‘스물두 명의 죽음’이란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숫자로 환원된 ‘스물두 명의 죽음’이라는 보도만으로는 이 참담한 상황을 도저히 드러낼 수가 없다. 아니, 이는 도리어 죽음을 은폐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라고 사회가 규정한 이름만으로는 이 상황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니, 그 이름에 오히려 사건의 참혹함이 갇혀버린다. 

같은 사인으로, 같은 유서를 가지고 죽은 사건이 스물두 번 발생했다. 제각기 다른 사람, 스물두 명이 죽은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스물두 번 죽었다. 죽고, 죽고 또 죽고 죽어서 스물두 번 죽었다.
 
좀 참고 견딜만했던 피부는 이제 너덜너덜해졌고, 으스러진 뼈에는 간신히 몇 개의 살점과 장기만이 덜렁거리며 붙어 있다. 이 사람은 언제까지 죽어야 하나. 죽음과 동시에 유령처럼 일어나 또 죽으러 간다. 그렇게 스물세 번째 죽음도 오는 걸까. 오지 말라고 해도 왔었고 기다리지 않아도 왔던 게 부고 통보였다. 그래서, 누군가 밀치면 그대로 밀려 또 죽으면 되나. 상복을 입은 너절한 육체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보인다.  
  
어둑한 밤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어느 시민이 해온 따뜻한 떡국을 나눠 먹으며 그들은 제법 서늘한 오월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고 이윤형 동지의 영정 그림이 새로 설치됐다.


분향소에는 고 이윤형 씨의 영정 그림이 새로 놓여 있다. 저 사람 앞에 향이라도 하나 올려야 할 것 같은 묵직함에 잠시 주저하다가 분향소로 다가갔다. 그림 속 저 시선이 닿는 곳은 어딜까. 그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굳게 다문 입술 사이, 그는 어떤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을까. 어떤 노래를 좋아했을까. 마지막에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삶을 꿈꿨을까. 죽음을 택하는 그 순간까지 놓고 싶지 않았을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그냥 그런 물음들이 마구 솟구쳤다. '스물둘'이라는 숫자 속에 함몰된 삶의 모습이 알고 싶어졌다. 한 명, 한 명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했고 어떤 노래를 좋아했는지, 어떠한 삶을 꿈꾸었는지 궁금해진다. 

이 죽음들을 숫자로 계량화하는 것을 그만두자. 드러내야 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그들의 이름과 얼굴이다. 오롯이 그들의 삶이다. 얼굴도 이름도 없는 영정 사진이 서럽다. 지금은 당최 그들의 삶을 알 수가 없다. 단지 지금 내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얼굴도 이름도 없는 이들의 죽음이다. 이 사회가 숫자로 환원한 ‘스물두 명'의 죽음이다. 

그렇게 당신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기 어려우니, 지금 우린 만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것 같다. 숫자 속에 삭제된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다. 그러면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 죽음의 실마리를 어쩌면 풀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냉동고를 열어서라도 그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 

향을 피어 올린다. 이 사회가 ‘스물두 명째 죽음’이라고 부르는 고 이윤형 씨의 얼굴을 마주하다가 고개를 숙인다. 두 번의 절을 올린다. ‘스물두 번째’가 되어서야 이렇게 당신의 얼굴을 확인한다. 비록 그림이지만, 이렇게라도 마주 대한다. 

이윤형, 그 이름을 낮게 읊조린다. 그리고 당신께 감히 말한다. 그 굳게 다문 당신의 입을 열어 달라.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 달라. 내게 당신의 참혹했던 지난 시간을 그 목소리로 들려 달라. 지난 3년의 세월이 대체 당신에겐 어떠했길래, 지금 당신이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지 나에게, 우리에게, 이 사회에게, 당신이 직접 들려 달라. 당신의 죽음으로 이 참혹한 사회에 마지막 상복을 입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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