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다른 부모들에게 한빛이 이야기를 전할 때가 있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학교에 다니는 이야기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나름대로 적응도 잘하고, 가끔 떼쓰고, 제멋대로 하려는 행동 등 학교생활에 대한 것들이다.
그러면 부모들이 이야기한다.
“그렇게 지내는 걸 보면 상태가 좋다는 말인데, 그러니까 가능한 거다.”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러지 심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조금 나은 이야기는 직접 물어보는 경우다.
“아이가 장애가 뭐고, 정도는 어느 정도냐?”
그런 부모들에게 정말 거침없이 이야기해준다. 있는 그대로 말이다. 대, 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숟가락질하면 절반은 버리고, 몸의 중심도 잡지 못해 늘 잡아줘야 하고, 혼자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읽고 쓰는 것은 꿈도 안 꾸고, 성질은 포악하고, 하루에 대발작은 많으면 10회 이상 일어나 일상 활동이 불가능하고, 복지관이나 학교에서 누워 지내기 일쑤라고 말이다.
그러면 또 물어본다.
“그 정도면 특수학교에 보내지 왜 일반학교에 보냈냐?”
그 질문에 답은 간단하다.
“특수한 교육을 받을 정도는 아니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글자나 숫자 말고 더 많은 것이 있는데 내가 아이를 학교 보내는 이유는 하나다. 재미나게 생활하면서 친구들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특수학교가 좋고, 일반학교가 좋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가 있어도 학교에 가는 목적이 분명해야 부모가 그 목적을 위해 아이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생각을 학교 안에서 실천해 볼 수 있어야 가능해지므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과 장애가 있어도 사회구성원으로 지내기 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데 그런 환경은 특수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반학교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 장애학생에게는 특수학교나 일반학교나 교육환경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 아이들 개개인이 가진 기운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고, 그런 속에서 ‘관계’라는 것을 알아가면 좋겠다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
장애 아이를 보는 부모들의 생각이 조금만 더 열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아이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하다 보니 늘 죄송하고 미안한 것투성이고, 그런 속에서 과연 아이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빛이는 늘 자신감에 차 있다. 물론 나 스스로 가지는 자기만족형 표현이다.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의 안부 인사를 받는 녀석이고, 선생님들도 늘 한 마디씩 거드는 인사를 건네고, 수련회나 현장학습을 다녀오면 재미있었느냐는 인사도 받지만, 이 녀석은 그 모두를 외면하고 완전 소 닭 보듯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호~ 이 자식이 완전 자신감 충만일세’하는 식으로 넘어가면서 구박하는 시늉을 놓는다.
학교에서의 모든 생활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대하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려 갈 것인지 아이디어도 주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니, 한빛이만 재미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같은 재미를 찾아갈 수 있게 되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아이의 건강상태나 장애 정도를 이야기하면 깜짝 놀라며 그 정도로 심한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부모들에게 환경은 부모가 만들어줄 수 있으며 돈도 안 들고 말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해 준다. 정말이다. 말은 돈이 안 들고, 방법이 괜찮다 싶으면 해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 학교생활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자신감만 가지면 되는 일이다.
수업은 빠져도 놀러 가는 건 절대 결석이 없다. 수련회나 현장학습은 아주 좋은, 정말 살아 있는 교육현장이기에 어김없이 보낸다. 컨디션이 좀 엉망일 때는 고민도 하게 되지만 선생님을 믿고 무식하게 여길 정도로 등 떠밀어 보낸다. 녀석은 한 번 다녀오면 기분전환이 되는지 피곤한 기색은 역력하지만 한껏 상기된 상태가 되니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부모들이 무모한 도전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해 보라고 권하는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다. 책과 말로 배울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단체행동이나 단체 생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의 시선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 큰 아이가 말도 못하고, 툭하면 소리나 지르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러나 함께 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점차 줄어들고 오히려 함께 놀아주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서 학교에 다니는 목적을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이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이제는 학교 안에서 아주 많은 아이가 한빛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살갑게 대해주고 있다. 그런 영향은 어른들(교사)에게도 전달돼 다시 아이들에게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전할 수 있는 순환이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편견이 줄어들고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게 해주었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 나름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한빛이는 이제 6학년(16살)이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벌써 어느 학교로 갈 것인지 준비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한빛이가 당연히 일반학교로 진학한다고 여기고 있고 집 근처 중학교 두 곳을 후보로 놓고 저울질(?)하는 중이다. 어느 학교로 가서 학교를 머리 아프게 할지 행복한 구상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학교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학생이 입학하게 되는 데 그에 따른 준비(환경, 마음)를 하셔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그 말을 또 해야 할 것 같다. 나 스스로 주눅 들고, 표현을 아끼고, 미안한 마음에 갇혀 지내게 되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녀석이 이런 마음을 좀 알아주면 좋겠는데, 그런 것에는 영 관심이 없고 컴퓨터만 좋아라 하니 참…
최석윤의 '늘 푸른 꿈을 가꾸는 사람들'